<기자수첩>중기 IT화의 `빛과 그림자`

 “기업 정보화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중소기업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기업용 정보시스템 중심축인 전사적자원관리(ERP) 대중화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2000만원에 ERP를 도입할 수 있었던 중소기업들이 향후 4000만∼6000만원대 투자를 감행할 것인지 의문입니다.”

 산업자원부가 지난해부터 실시해온 ‘3만개 중소기업 IT화 사업’의 명암이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산자부가 관련사업의 조기 종료를 선언하면서 발생할 공백이 ERP업계의 걱정거리로 연결되고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들은 산자부 지원금 2000만원에 힘입어 추가로 2000만원만 투자하면 ERP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4월 현재 1873개 중소기업들이 산자부 지원하에 ERP 도입을 완료했거나 구축중이다. 불과 1년여만에 1800개 이상 수요가 창출되면서 연 매출 3000억원 미만의 중견·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시장을 개척해온 토종 ERP업계가 IT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숨통을 틀 수 있었다.

 그러나 799억원에 달했던 산자부 지원예산이 1년여간 집행된 후 잔여금액이 150억원대로 줄어들면서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수요는 늘었지만 가격이 낮아지는 ‘의도하지 않았던 박리다매형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ERP업계가 분석하는 연 매출 3000억원 이하의 중견·중소기업용 ERP 적정가격은 6000만∼1억원선. 하지만 중소기업들의 ERP 투자계획은 산자부 지원여부와 상관없이 2000만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즉 ‘ERP를 도입하면 좋겠지만 2000만원 이상을 투자하느니 예전처럼 수작업으로 정보를 관리한다’는 게 중소기업들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매출·인력·회계 규모가 상대적으로 왜소한 중소기업으로서 굳이 거금(?)을 들일 이유가 없다는 심사다. 그동안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순항해왔던 토종 ERP업체의 입장에서는 사업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계속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면서도 이에대한 대책을 마련치 못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ERP업체들의 책임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의 추가 지원을 학수고대하기보다는 정상적인 경쟁을 통해 사업을 활성화시키고 왜곡된 시장구조(가격)를 하루빨리 정상화시키기 위해 팔을 걷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엔터프라이즈부·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