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이번에도 텍사스인스트루먼츠를 울릴 수 있을까.
휴대폰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휴대폰용 베이스밴드 칩세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가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가운데 PC 시장의 강자 인텔을 비롯한, 모토로라·퀄컴 등 유수의 반도체 업체들이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시장조사업체인 포워드컨셉트에 따르면 TI는 지난해 베이스밴드 칩세트에 사용되는 DSP 시장의 50%를 점유했다. 이에 비해 경쟁사인 모토로라와 퀄컴의 점유율은 고작 13%와 12%선에 불과하며 인텔은 아직 명함도 못내민 실정.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모토로라는 최근 독일의 지멘스와 3세대 휴대폰용 칩세트 공급계약을 체결했으며 인텔은 조만간 메모리, 마이크로프로세서, 무선 기능을 단일칩으로 통합시킨 신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퀄컴은 이미 한국에서 차세대 칩세트를 선보인 바 있다.
후발 업체들이 이같은 베이스밴드 칩세트 시장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이 시장의 규모가 비록 PC 시장의 절반에 못미치지만 휴대폰이 점차 고급화되면서 시장 규모가 커지는 것은 물론 수익률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따른 것이다. TI의 회장인 톰 잉기보스는 지난달 주주들에게 베이스밴드칩이 휴대폰 전체 단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30%지만 앞으로 65%선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후발업체들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TI의 입지는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TI는 최근 오랜 협력사인 노키아, 에릭슨 등에 추가로 일본의 NEC, 마쓰시타, 후지쯔 등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또 팜 마이크로소프트(MS), 휴렛패커드(HP) 등의 컴퓨터 업체도 고객사 명단에 올렸다. 심지어 인텔의 최대 고객사중 하나인 휴렛패커드의 경우 지난 2월 TI의 칩세트를 기반으로 한 휴대폰 겸용 PDA ‘조나다928’을 내놓기까지 했다.
가트너의 애널리스트인 앨런 브라운은 “휴대폰 제조업체와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TI의 베이스밴드 칩세트를 위해 작성한 소프트웨어를 다른 공급자용 칩으로 재작성하는 것을 꺼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를 인텔이 PC 시장에서 누리고 있는 프리미엄에 비유했다.
물론 이에 대해 노키아의 대변인인 페카 이소솜피는 “TI의 베이스밴드 칩은 ARM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많은 반도체 업체들이 폭넓게 이를 채용했기 때문에 휴대폰 업체들이 최소한 소프트웨어의 일부분이라도 다른 ARM 기반 칩에서 재사용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TI를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몰아냈던 인텔이 다시 한번 TI를 곤경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포워드컨셉트의 사장인 윌 스트라우스는 “인텔이 5년내에 TI, 모토로라와 함께 주요 공급자로 부상할 것”이라며 “인텔은 수십억달러의 현금을 가지고 있으며 곧 흥미로운 신제품(메모리·프로세서·무선 기능 통합 칩)도 내놓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TI의 무선사업담당 수석 부사장인 길레스 델파시는 “우리는 아주 편집증적이며 편집증 환자인 인텔한테 많은 것을 배웠다”며 “이 시장은 컴퓨터가 아니라 통신분야기 때문에 다른 게임이 될 것”이라며 시장 수성을 자신했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