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기술 수출 규제 정책이 실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미 정부는 그동안 중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군용으로 전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을 까다롭게 통제해 왔으나 최근 들어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를 공급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이같은 정책이 자국 기업의 발목만 잡게 된 것.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의 세미컨덕터매뉴팩처링인터내셔널(SMI), 그레이스세미컨덕터매뉴팩처링(GSM) 등 2개사는 이미 유럽과 일본으로부터 첨단 0.13미크론 공정 장비를 주문, 내년초부터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와 관련, SMI의 조지프 시는 “만일 미국이 장비를 팔지 않겠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이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때 미국이 독점했던 반도체 시장은 지난 80년대 일본의 기업들이 리소그래피 장비 등 핵심 장비 시장을 장악했으며 유럽의 기업들도 반도체에 필요한 화학·가스·필름 재료 등의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누구든 돈만 있으면 미국 기업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최신 반도체 설비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미 회계감사원(GAO)도 이같은 상황을 우려해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군이 외국의 수출 통제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최신 반도체 설비로부터 커스텀 칩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고 경고했다. 즉 중국의 통신·감청·미사일 유도 장비 등이 외국으로부터의 부품 공급 중단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 국방부 익명의 관리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경우 조만간 미사일 추적에 사용되는 첨단 위상배열 레이더 등과 같은 군용 제품을 자체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보고서는 이에 따라 중국의 반도체 제조 산업을 미국에 비해 2세대 뒤지도록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수출 통제 정책을 재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미 정부를 비롯해 33개국은 민감한 기술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96년 다국간수출통제조정위원회(CCMEC)에 이어 바세나르 협정을 체결했지만 각국은 현재 독자적으로 첨단 기술의 수출을 결정,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미국도 이에 따라 대부분의 장비 판매를 허용하기 시작했지만 수출 허가에 무려 6개월 이상이 소요돼 자국 기업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SMI는 당초 미국에서 장비를 구매하려고 했으나 수출 허가가 지연됨에 따라 결국 구매선을 스웨덴으로 바꾼 바 있다.
이에 대해 조지프 시는 “우리는 미국과의 비즈니스를 원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제 더 이상 거대 시장인 중국을 외면할 수만은 없게 됨에 따라 미국의 수출 규제 정책에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휴대폰 시장이 된데 이어 내년에는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의 PC 시장으로 등극할 전망이다. 또 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중국이 오는 2010년까지 세계 2위의 반도체 시장이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는 당국이 규제를 풀 경우 앞으로 10년내 자사 매출의 20% 이상이 중국에서 비롯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