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곤히 잠든 8일 새벽 3시 30분(한국 시각).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세계 IT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10여년간 시장다툼을 벌여온 HP가 라이벌인 컴팩컴퓨터를 인수, 새로운 HP로 공식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 비록 컴팩의 일부 브랜드가 시장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로써 20년 성상을 유지해온 컴팩은 바야흐로 ‘역사 속 기업’으로 사라지게 됐다.
앞서 지난주 금요일에는 이 날을 마지막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컴팩의 주식이 거래중단되기도 했다.
지난 82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3명의 창업자에 의해 설립된 컴팩은 업계 최초로 386PC와 PC서버를 선보이는 등 그간 세계 IT산업 발전에 한축을 담당해왔다. 사실 IBM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IT기업은 대부분 불황기에 탄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렇고, HP도 그렇다.
IBM은 1910∼12년의 경기불황기에 설립됐으며, HP는 1937∼38년의 경기침체기에 창설됐다. 또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도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지난 1973∼75년의 세계 경기불황기에 탄생했다. 반면 컴팩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 발전, PC 보급 확대 등 컴퓨터 시장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던 해에 세워졌다. 당시 IBM·애플 등 많은 컴퓨터업체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다양한 컴퓨터들을 출시했는데 컴팩도 83년에는 휴대형 PC를 업계 처음으로 발표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컴팩의 연간 매출은 400억달러 정도. 우리나라 일년 예산(111조원)의 50%에 달하는 막대한 액수다. 이런 거대기업이 몇 달 만에 시장과 소비자의 요구에 의해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일각에서는 세계 경기회복 여부에 따라 HP-컴팩과 같은 메가머저(대통합)가 컴퓨터는 물론 통신·반도체 분야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세계 IT와 시장은 급변하고 있으며, 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영원한 강자가 없는 시장에서 세계 최대 휴대폰 인구니, 세계 최대 인터넷 인프라니 하는 말에 취하지 않고 우리가 눈을 부릅떠야 할 이유기도 하다.
<국제부·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