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있을까. 한마디로 없다. 무비일색도 세월이 가면 늙어 볼품이 없다. 천하장사도 나이들면 걷기도 힘겹다. 그래서 무릇 생명있는 것의 천적은 바로 시간이라고 한다. 생명있는 어떤 것도 세월이 가면 생을 마감해야 한다. 전설속의 인물인 중국의 삼천갑자 동방삭은 18만년을 살았다지만 그도 영생한 것은 아니다. 숯을 씻던 저승사자에 붙잡혀 갔기 때문이다.
같은 세월을 살아도 사람에 따라 삶의 명암이 엇갈린다. 올곧게 산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은 보석처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반대로 구부리며 산 사람은 남긴 족적과 비슷한 비리나 부패가 발생할 때마다 반면교사가 된다. 두고두고 오명의 꼬리표를 남긴다.
한날 한시에 난 손가락도 길고 짧다는 옛말처럼 사람 사는 철학이 일치할 수는 없다.
얼굴 모습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분수를 알고 처신에 엄격했다면 최소한 오명의 반면교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 중 그의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한테 교훈을 준다.
다산은 18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했다. 그중 10여년을 전남 강진에서 지냈다. 그는 유배생활 중 500여권의 저술을 남겼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대략 이렇다.
“나는 너희에게 논밭은 남겨줄 만큼의 벼슬살이를 못했다. 그 대신 두가지 신비의 부적을 주고자 한다. 그것은 근(勤)과 검(儉)이다. 너희는 이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아들에게 부지런하며 검소하게 살 것을 강조한 것이다.
조선의 실학자 성호 이익도 검소하게 본분을 지켜며 살았다. 성호사설과 곽우록을 통해 당시의 사회제도를 실증적으로 비판한 바 있는 성호는 삶이 청빈해 항상 쪼들리며 살았다. 그는 가을에 곡식을 수확하면 12등분해 생활했다고 한다. 먹다 쌀이 모자라면 죽을 끓여 생활하면서도 다음달 먹을 몫의 쌀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시끄럽고 요란하다. 분수를 모르고 과욕을 부린 사람들이 온통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처음 가졌던 지족심을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부린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분수를 모르면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만족할 줄 모르면 조갈증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비리의 불씨다.
지금 세계는 IT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하루가 급변한다. 집안 분쟁에 눈 돌릴 겨를이 없다. 글로벌 시대 살아갈 기술개발과 사업찾기에 주력해야 할 때다. IT다음의 성장엔진을 만들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집안 비리 의혹사건에 연일 매달려 있다. 그것도 60억 인구가 지켜볼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서다. 사람이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일이 꽈배기처럼 꼬인다.
화염경에 ‘초발심시 변성정각(初發心時 便成正覺)’이란 경구가 있다. 이른바 처음 가졌던 그 한마음이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뜻이다. 처음 가졌던 그 마음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IT강국도, 기술개발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도, 일류 상품 개발도, 처음에 가졌던 그 마음을 끝까지 유지해야 뜻을 이룬다. 모두 명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