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디지털,그 이상의 것

 ◆정진욱 모닝365 사장

 지난 한해 동안 최대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출판사가 붙인 부제는 ‘당신의 인생에서 일어나게 될 변화에 대응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이처럼 변화에 대한 책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변화가 반가운 존재가 아니라 두려운 대상이라는 사실의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반갑다면 달려가 맞으면 그만이지만 두려운 상대는 연구하고 숙고한 다음에 만날 수밖에 없다.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명제는 역사이래 모든 개혁가의 구호다. 그리고 변화의 필요성은 다들 공감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변화가 ‘자기 일’이 됐을 때 사람만큼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우도 드문 것 같다.

 미국의 저명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에버트 M 로저스 교수는 그의 저서 ‘이노베이션의 확산’에서 변화에 대한 반응에 따라 사람을 다섯 종류로 나누었다. 변화를 즉시 수용하는 이른바 혁신자는 약 2.5 %, 빠르게 수용하는 사람(조기수용자)은 13.5% 정도, 그리고 비교적 빠른 수용자 대중은 34%다. 반면에 변화가 정착되기를 기다렸다가 수용하는 후기 수용자 대중이 34%, 그리고 끝까지 변화에 저항하다가 체념하는 최후 수용자가 16%나 된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절반은 변화를 일단 거부하는 셈이다.

 그런데 로저스 교수가 이 책을 출간한 때가 1983년이니 아날로그적 환경에서의 변화에 대한 분석일텐데 여기에 급변한 디지털 환경까지 곁들여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아마도 로저스 교수가 분류한 적극적인 변화 수용자의 비율이 디지털 환경에서는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인터넷서점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기획이나 시도를 해보면 이같은 생각을 입증하는 결과를 많이 보게 된다. 인터넷서점은 오프라인 매장과 달리 사이버공간이라 매장 디스플레이도 쉽게 바꿀 수 있고 다양한 기획행사도 맘대로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문제는 이같은 변화가 항상 환영받지도 수용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두달 전 필자가 운영하는 인터넷서점에서는 주문한 도서·음반 같은 상품을 편의점에서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새로 시작했다. 그러나 걱정이 앞섰다. 고객들이 집이나 직장까지 직접 배달해주는 편리한 택배가 있는데 자신이 직접 편의점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까. 인터넷서점의 경우는 이미 지하철역사에 주문한 물건을 찾아가는 ‘물류포스트’를 운영한 경험이 있어서 더 그랬다. 고객들이 이 편리한 서비스를 광범위하게 이용하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그동안 분석한 바로는 우리나라 고객들은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더 편한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편의점을 택배거점으로 하는 사업만 해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집에서 물건을 받아보는 사람만큼 집주변 슈퍼나 편의점에서 택배물건을 보내고 찾아가는 사람이 많다. 100원이라도 싸면 그쪽을 이용하려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우리 고객들은 몸 움직이는 일에 비교적 거부감이 큰 편이다.

 편의점 픽업서비스 첫날 고객은 전체회원 101만명 가운데 90명. 혁신자 비율 2%와 실제 활동회원 비율을 감안한다 해도 매우 적은 숫자였다. 그 뒤로 이용고객은 늘었지만 아직도 혁신자와 조기수용자를 설득하는 단계다. 변화가 수용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는 중이다. 그러나 고객이 우리 뜻대로 선뜻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고객을 맞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변화에 적응해가는 시간의 요소를 제외한다면 경험으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편의점 픽업서비스만 해도 배송료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편의점을 배송지로 택하는 고객의 인터넷상 거래경로를 편리하게 하고 편의점에 찾아갔을 때 점원이 친절하고 신속하게 서비스를 하는 것 같은 ‘정성’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가 따로 없어 보인다. 결국 디지털시대에 디지털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의 따뜻한 숨결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