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전자상거래 과세 방침에 美정부-IT업계 강력 반발

 내년 7월부터 미국·아시아 등 비유럽권 업체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유럽연합(EU)내 소비자들에게 게임·소프트웨어와 같은 디지털 콘텐츠를 판매할 경우 부가가치세(VAT)를 내도록 한 EU의 결정에 대해 미 정보기술(IT) 업계와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본지 8일자 1·3면 참조

 지난 7일 EU의 15개국 재무장관들은 “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들은 본사가 있는 국가에 소재지 등록을 마치고 그 국가의 세율에 맞는 VAT를 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 제정에 합의했다. EU는 이 법을 게임과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디지털 음악 등 온라인을 통해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미제조업협회(NAM)를 비롯한 무역관련 사업자단체들이 즉각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다. 주로 미국 업계를 겨냥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NAM의 과세담당자인 킴벌리 핀터는 “이번 결정으로 미국 기업들이 차별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미정보기술협회(ITAA) 해리스 밀러 회장도 “유럽 기업들이 경쟁 기업들에 장벽을 만들어내는 고전적인 수법”이라고 비난하면서 “EU가 직면한 경쟁력 열세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업계는 EU의 결정이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기업 소재지를 찾기도 용이하지 않을텐데 소재지에 근거한 과세가 가당키나 하냐는 반문이다.

 핀터는 “소비자들이 어디 사는지 파악하고 상품을 파는 업체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예컨대 ‘닷디이(.de)’가 반드시 독일 거주자들만 갖는 인터넷 계정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들 역시 마음만 먹으면 소재지를 허위로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부연했다.

 미 정부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핵심 원칙이 제정되는 등 국가간 전자상거래 과세기준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EU가 이런 발표를 한데 대해 서운해하고 있다.

 미국은 세금체계를 확정짓기 전에 국제적인 콘센서스를 도출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EU의 이번 조치로 각국이 합의안을 만들기보다 EU를 따라갈 가능성이 있고 이는 온라인 시대를 앞두고 새로운 혼란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재무부의 타라 브래드쇼 대변인은 “EU의 새로운 VAT제도가 갖는 문제점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비EU국가 업체들에 대한 과세차별은 물론 전자상거래 시장 자체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EU는 VAT가 OECD 규정을 어기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더욱이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몇 달 전부터 예고돼 왔던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EU가 이번 결정을 내린 이유는 전자상거래 부문 대미 무역역조 시정과 함께 역내 IT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EU 회원국가들은 15∼25%에 달하는 다양한 VAT율을 갖고 있다. EU는 이번 조치가 시행될 경우 EU내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IT업체들이 룩셈부르크같이 낮은 세율을 내는 국가로 몰릴 것이고 이는 각국간 세율인하 경쟁으로 이어져 결국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에 대한 반발은 전세계로 확산될 전망이다.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것은 역시 미국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