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국내 최대 통신장비 수요자다. 이러한 회사의 민영화는 국내 통신장비 시장 구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물론 KT의 기존 설비투자 규모와 통신장비 구매방식이 단기간에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민간기업으로 옷을 바꿔입는 KT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공기업적 성격의 투자 행태에서 점차 벗어나 철저히 사업성과 수익성 중심으로 설비투자 규모와 방법을 결정할 게 분명하다.
연간 수조원 규모인 KT의 통신장비시장이 완전 개방된 가운데 그나마 최소한의 보호장치만이 명맥을 유지했던 국내 업체로서는 보호장벽이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국내외 장비업체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증대되는 우려=KT는 장비국산화 차원에서 국산 장비의 개발일정에 맞춰 신규투자 시기를 결정했다. 이러한 정책적 배려는 민영화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정부가 EU·미국 등 추진중인 국제조달협정의 폐지도 KT의 장비 구입에 대한 자율성을 높여줄 전망이다.
장비업체들은 제품 개발과 신기술 확보에 대한 의지가 크게 꺾일 수 있다고 걱정한다.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KT는 당초 장비 국산화 일정을 고려해 2004년에 도입키로 했던 광회선분배기(OXC) 장비를 올해부터 도입키로 전격 결정했다. OXC는 올옵티컬 전송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핵심장비로 정부차원에서 2004년 국산화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나 KT가 전송망고도화 작업의 일환으로 당초 계획을 변경, 올해부터 장비를 도입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KT의 장비도입계획 일정 등을 고려해 OXC 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의 사업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뒤따르는 것은 물론 국내 OXC 시장은 해외 장비업체들의 독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이같은 사례는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일부에선 KT가 이미 경쟁체제를 통해 장비를 구매하고 있으며 완전경쟁체제가 오히려 국산장비업체의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다수 장비업체들은 이같은 주장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분 인수가 대안?=장비업계는 위기감이 고조되자 지분 인수를 하나의 대안으로 모색중이다. 정부가 KT 주식의 1.5% 이상을 매입하는 기업에 KT와의 전략적 제휴에 이점을 부여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분 인수에 참여할 만한 자금 여력을 가진 업체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극소수다.
중소 장비업체들은 자금도 없지만 KT 외의 통신사업자를 신경써야 해 지분 참여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KT의 지분을 인수할 계획이 없다고 공식 천명했으나 상황이 달라진 만큼 지분 인수에 참여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삼성이 그룹차원에서 KT의 경영권 확보에 나서고 여기에 삼성전자가 참여할 경우 통신장비 시장구도에 상당한 파괴력을 가진 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LG전자는 KT와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 지분 인수를 검토할 것으로 보이나 주로 이동통신 장비에 주력하고 있으며 LG텔레콤 및 데이콤과 계열사 관계여서 그 여파는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다.
민영화된 KT는 주주사의 이익극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1.5% 이상의 지분을 갖고 참여하게 되는 삼성·LG측 장비구매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 중소기업들은 조달협정 폐지로 외국업체에 대한 경쟁력은 다소 높아졌으나 주주사인 대기업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소 장비업체들은 공동으로라도 KT 지분인수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으나 현실적으로 협의할 시간도 모자라고 자금도 없다.
크든 작든 장비업체들은 정부가 민영화 이후 KT가 국내 통신사업자에 대해 투자를 적극 유도하는 한편 가급적 국내 장비 산업의 자생력을 키우는 사업자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욱기자 sw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