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투자목적의 KT지분 매입에는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에서는 삼성측의 진짜 의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액면 그대로 삼성이 상징적인 수준에서만 지분을 인수하고 경영권을 탐내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경쟁기업을 안심시키고 악화된 여론을 잠재운 다음 ‘삼성 외엔 대안이 없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재계는 일단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9일 KT지분 참여여부와 관련, “내 사업도 바쁜데 남의 사업에 참여할 여력이 없다”고 밝혀 그룹차원의 참여는 하지 않을 방침임을 시사했었다. 그러나 10일 그룹구조조정본부는 “이는 전략적 투자자로서 KT지분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지 금융계열사들이 투자를 목적으로 한 KT지분 매입에 대한 얘기는 아니었다”며 단순한 투자 목적의 지분 매입에는 참여할 뜻임을 내비쳤다.
증권가에서는 그러나 삼성그룹이 자체 금융계열사를 동원해 KT지분을 매입키로 하는 방침을 확정했으며 시장의 흐름과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봤다. 지난 주말에는 “삼성이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계열사를 통해 3% 가량의 지분을 매입하기로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소문까지 나돌았으나 삼성측은 공식 부인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그룹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의 혼선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이같은 일련의 발언에 대해 고도의 ‘기술적인 표현’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 이 회장이 KT의 지분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투로 얘기한 것은 반대로 그만큼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즉 삼성측이 KT의 경영권 인수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 방침과 여론에 대한 반발성 의사표시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삼성구조본부측은 이 회장 발언 직후에는 삼성측의 참여가 ‘언론의 자가발전’으로 돌렸으나 이후 그룹 금융계열사 위주의 투자목적 투자 정도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KT의 장비공급과 관련,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정지분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엇박자를 연상케 하는 삼성 내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외부 반응을 떠보려는 제스처가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그룹은 어차피 이번 지분입찰을 통하지 않고도 상당량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있다. 고작 2, 3% 지분이라도 인수해 발을 걸쳐놓은 다음 시기를 봐 경영권을 인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삼성화재나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를 동원해 언제든지 시장에서 주식을 매집할 수 있으며 삼성증권이 최소물량인수제로 떠안는 0.6%(200만주)의 지분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결코 이번 지분인수전에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KT는 모든 산업의 기본 인프라라 할 수 있는 종합통신사업자면서 e비즈니스그룹인 만큼 소매업을 갖고 있지 않은 포스코와는 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며 “이를 모를 리 없는 삼성이 KT지분 인수전에 불참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삼성은 당장 악화될 불리한 여론을 뒤집어 쓴다거나 경쟁사의 표적이 되지 않고도 다양한 KT지분 인수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삼성측의 다음 행보가 많은 것을 시사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