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기 정보문화센터소장
문화(culture)라는 용어는 영어권에서 ‘경작하고 양육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농업(agriculture)과 원예(horticulture)라는 단어 안에 컬처가 들어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문화를 ‘삶의 방식’이라 부르기도 하며 한 집단 내에서 의미가 생산되고 교환되는 실천의 집합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문화의 의미가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는 만큼 자연히 사회 내에서 만들어내는 문화도 여럿이다. 문화의 품격을 뜻하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문화의 종류를 나타내는 엘리트문화,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이는 교통문화, 음주문화 등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 새로이 등장한 것이 정보문화다.
여기서 정보문화란 정보와 지식이 사용가치를 넘어 교환가치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며 정보통신망에 의해 네트워크화된 사회내에서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사회적으로는 디지털 미디어의 출현과 함께 유년기를 보낸 n세대의 등장을 들 수 있다. n세대는 컴퓨터에 익숙하고 인터넷 사용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인식하며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세대로,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지리적으로는 물리적인 공간의 제한에서 벗어나 전지구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통신망 사회(network society)를 형성하고 있다.
또 경제적으로는 지식기반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서비스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 서비스부문에서의 고용창출 확대 및 고숙련 인력에 대한 수요증가 등 산업 및 고용구조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처럼 정보통신기기의 급속한 발달과 정보고속도로의 구축으로 정보문화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활들을 실천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과 함께 정보문화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정보의 과잉은 의미의 쇠락을 가져와 음란정보, 소비적인 정보 등 감각적인 정보에의 치중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공유의 실현을 주창하던 인터넷이 성인정보와 루머 등 쓰레기 정보로 넘쳐남으로써 종국에는 인터넷이 멸망할 것이라는 종말론까지 생겨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무분별한 정보의 사용으로 인터넷중독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인식론적 공간으로 탄생한 사이버공간이 오히려 소외현상을 조장함으로써 인간을 더욱 개체화하고 비인격화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정보사회에서도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정보격차가 산업사회의 빈부 차를 더욱 넓히려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로는 정보문화를 규정하는 개념이 너무 한쪽 방향으로 편중돼 있다는 데 있다. 즉 사회에서 순환되고 저장되는 정보의 양만으로 정보화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히 지금까지 정보문화의 의미도 넓이의 확산만을 절대적인 이념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를 통해 상당 부분 사회 전반의 정보화와 국민의 정보인식 제고에 기여해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정보화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게 됐고 사회 일각에서 정보문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확산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질적인 수준을 높이는 정보문화 조성이 시급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새롭게 실천해 나가야 할 정보문화를 위해서는 먼저 음란정보 이용, 단순 웹서핑, 사이버도박 등 소비적 정보행위 차원에서 벗어나 이용자 자신의 생활 및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생산적 정보행위를 조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정보격차 및 정보 오남용 등 정보화 역기능을 초기부터 뿌리뽑을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범국민적 차원의 건전한 정보문화도 육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우리가 체득했던 정보문화의 다양한 노하우를 지구촌 시대에 걸맞게 저개발국이나 북한 등에 전파할 수 있는 정보문화의 세계적인 전략도 요청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톱다운 방식 정보문화를 만들어왔다. 이른바 정보문화를 경작하고 양육하는 데 치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버텀업 방식의 실천적인 정보문화 조성이 필요하다. 나부터, 그리고 우리부터의 정보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소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