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NT)을 선도할 국가 나노종합연구시설, 일명 나노팹을 유치하기 위한 기관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기관 간 로비전과 비방전이 치열해지고 있어 이로 인한 후유증도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주무부처인 과학기술부의 무원칙성이다.
당초 과기부는 나노팹 공모마감일을 3월 초로 공고하고 접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과기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감일을 3주 가량 늦췄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준다는 명분이었다. 여기에서 그쳤으면 다행이다. 과기부는 사업계획서를 요약한 국문 및 영문 사업요약서를 제출할 것을 공표했다. 불과 마감 4일을 앞둔 시점이었고 그것도 과기부 인터넷 홈페이지에만 올렸다.
사업유치기관은 부랴부랴 요약서를 만드느라 부산을 떨었으며 과기부 홈페이지를 들르지 않아 방침을 전해듣지 못한 일부 기관은 마감날 접수창구에서 요약서를 제출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정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차 서류심사 후 탈락기관에는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총 6개 기관이 신청, 탈락기관은 2개에 불과했는데도 과기부는 이를 소홀히 했다. 급기야는 5월 초에 하기로 했던 선정결과 발표를 6월로 연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이유에 대해 과기부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하고 있다. 물론 나노팹 사업이 2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대형사업이라는 점에서 신중을 기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게 신중을 기해야 할 사업이라면 왜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하고 땜질식으로 진행되는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나노기술이 부상하면서 각 정부부처들이 눈독을 들이자 과기부가 갑작스럽게 일을 진행하면서 빚어진 일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파행은 ‘과기부가 낙점될 기관을 미리 정해놓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과기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일단 저질러 놓고 문제점을 고쳐 나가는 것은 국가기관이 보여줄 모습이 아니며 불신과 의혹만 키운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산업기술부·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