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거대통신기업 텔레포니카가 보유중인 위성TV업체를 경쟁사인 카날 새털라이트 디지털과 합병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카날 디지털을 소유한 스페인의 방송재벌 폴란코 집안과 텔레포니카를 이용해 이를 견제하려던 스페인 정부간의 싸움에서 사실상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폴란코가는 스페인의 방송업계 대부분을 통제하는 막강 재벌이었다. 그러나 현 스페인의 중도 우파 정권은 이러한 폴란코 집안의 방송지배를 개혁하기 위해 과거 국영통신업체였던 텔레포니카를 방송업계로 진출시키는 모험을 감행했다.
텔레포니카의 막강한 자금력과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스페인 방송업계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로 인해 지난 5년간 스페인 방송업계에서는 텔레포니카와 폴란코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했고 싸움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위성TV시장에서 더욱 격렬했다.
그러나 텔레포니카의 입장에서는 이런 싸움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위성TV 자회사인 바이어 디지털이 8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창립 이래 한번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한 골칫덩어리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해 약 1억6000만유로에 달하는 한일월드컵 TV중계권료를 지불한 것을 계기로 바이어 디지털의 적자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미 텔레포니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버렸다.
이에 따라 텔레포니카는 벌써부터 폴란코와 화해를 모색해 위성TV시장에서 발을 뺄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물론 이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태도는 부정적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 스페인의 엘 파에스는 현 집권당 의원들이 독점 등을 이유로 텔레포니카의 위성 TV시장 포기를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최근 텔레포니카의 회장 세자르 알리에타가 스페인 최고위층을 상대로 직접 위성 TV시장에서의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사태의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와 브라질 통신시장 침체 등으로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는 텔레포니카로서는 더 이상 위성TV 시장에서의 손실을 감수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여기에 마침내 스페인 정부가 동의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이번 합병발표와 관련해 텔레포니카로서는 아직 한가지 더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EU 경쟁당국이 새로운 합병업체의 시장독점 유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지가 그것이다.
EU가 이번 합병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텔레포니카는 새로운 합병업체의 경영에서 손을 떼는 방식으로 위성TV시장에서 철수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