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3개의 화살

 ◆리상춘 총련 컴퓨터전문위원회 위원장

 지난 3월 하순, 오사카에서 인천 국제공항을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임동원 대통령특사 평양 방문’의 뉴스기사를 접했다. 6·15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들끓었던 남북 화해 협력의 분위기가 식고 움직임이 지체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특사 방북의 뉴스기사를 큰 기대와 관심을 갖고 읽었다.

 당시 서울 방문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북한 과학기술 이해의 세미나’에 ‘재일본 조선인과학기술협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는 것이었다. 세미나에서 포항공과대학교 박찬모 대학원장과 한국화학연구원 김대황 박사의 경험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박찬모 원장은 북녘의 평양정보쎈터와 함께 하는 가상현실(VR)에 관한 공동연구에 대해, 그리고 김대황 박사는 농업과학원과 함께 자신이 개발한 농약에 관한 실험을 북녘의 한 농장에서 한다는 내용이었다. 발표 내용을 들으면서 연구발표자들이 마치 북녘의 공동연구자들과 대화하는 것 같은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공동연구 과정이 매우 ‘협력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남북경협, 남북 공동연구 등의 남북 화해 협력사업에는 큰 정치적인 테두리가 중요한 것은 틀림 없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인 테두리만 있어도 그것을 실행하는 단위에서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사업성과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협력사업을 벌이는 단위들이 공통의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사업에 대해 논의하며, 그 과정에서 정열을 나눠야만 진짜 ‘협력’에 기초한 사업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전자신문 지면을 통해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일본(재일동포)의 3국을 맺는 IT교류의 필요성에 대해 제기해 왔다. 남북 IT교류 협력에서 ‘상호이해’는 가장 중요한 요소며 재일동포들이 이를 위해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군사분계선은 없으나 남북분단의 불행한 역사를 재일동포들도 공유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총련과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민단의 2대 조직에 의해서 재일동포들의 마음 속에 있지도 않는 분계선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잘 아는 총련’과 ‘대한민국을 잘 아는 민단’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마음 속에 있는 분계선만 극복하면 남북 화해 협력의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십여년간 IT의 전문가로서 북녘땅을 방문하고 교류하면서 많은 친구와 선배연구자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을 사귀게 되었다. 모두 소박하고 근면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연구활동 때마다 그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최근 몇 년사이 남녘땅의 IT전문가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아졌다. 남녘땅에도 남북 화해 협력, 남북통일을 위해서 모든 힘을 다하시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며 그런 분들의 얼굴도 나는 생생히 그려볼 수 있다.

 나는 남북 양 조국의 화해 협력과 장래의 과학기술, 산업발전을 위해 북녘땅에 있는 신뢰할 수 있는 IT전문가들과 남녘땅에 있는 훌륭한 IT전문가들이 교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직접 교류하게 되면 협력사업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착실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박찬모 원장과 김대황 박사의 경험담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나의 화살은 꺾을 수 있어도 3개의 화살은 꺾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이 각각 독자적으로는 어려움도 많고 큰 정치적 테두리 안에서는 거의 무력할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얼굴이 보이는 대상들과 같은 목적, 목표를 가지고 힘을 합쳐서 ‘3개의 화살’을 이룬다면 새로운 힘도 나올 것이며, 어떤 난관에 부닥쳐도 해결할 방도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