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그들만의 잔치

 통합 한국HP가 마침내 출범했다. 최준근 사장은 22일 “우리가 제품을 가진 것도, 연구개발(R&D)을 주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재산은 고객과 바로 여러분들입니다”라는 공식멘트로 신HP의 출발을 선언했다.

 통합 한국HP의 출범은 HP가 IT업계에 차지하는 비중만큼 국내 IT산업계에서는 큰 잔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에 지켜본 통합 한국HP의 출범은 그들만의 잔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몇주동안 HP와 컴팩의 통합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한국HP는 시간에 따른 상황의 변화를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이날 출범식도 본지의 보도가 아니었다면 일반 사내행사처럼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치러졌을 게 분명하다.

 물론 최 사장이나 HP 관계자들의 속내와 고민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추진되는 통합 작업에 대해 아시아의 작은 국가인 한국지사의 입장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부분 IT산업 종사자들은 한국HP가 미 HP의 한국지사라는 위치보다는 한국 IT산업을 이끌어가는 리딩기업으로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 미 HP와 컴팩이 통합한 것은 미국내의 일이지만 국내 기업들이 과거의 투자가 제대로 보호받을 것인지 고민하고 합병 조직의 비전에 따라 직장을 잃게 될 것인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직원들의 일은 미국이 아닌 국내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HP의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국 IT산업이나 더 나아가서는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될 소지도 있다. 한국HP가 이같은 국내 상황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합병진행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야할 의무가 있지만 한국HP는 그렇지 못했다.

 다행히 통합법인 출범식에서 최 사장이 고객과 직원을 가장 먼저 앞세운 것은 통합 한국HP의 현안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새롭게 거듭나는 통합 한국HP가 본사의 지침에 의해 모든 의사가 결정되는 경직된 모습보다는 국내 고객들과 직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한국 IT산업계 거인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엔터프라이즈부·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