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세계 표준`과 남·북 역할

 ◆신종식 (주)인터벡 대표이사

 “한국이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서는 앞설 수 있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보강국론이나, 과학기술과 정보기술 중심의 단번 도약을 꿈꾸는 북한의 신사고론은 통일한국이 21세기 동북아의 중심축이 되기 위한 공통된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단번 도약을 위한 주력산업을 정보산업으로 정하고 이를 육성하기 위한 북한의 노력은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설립 합의, 남북합작 IT회사인 하나프로그람센터의 출범 등 최근 1, 2년 사이에 취한 발빠른 행보를 통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알려졌으나 “첨단연구소도 인터넷을 모뎀으로 접속하는 인프라를 보고 사이버 교육을 통한 교류는 제안도 못해봤다”는 비트컴퓨터 조현정 사장의 지적대로 인터넷 환경은 열악하다. 또 키보드의 자모배치, 용어 등도 남과 북이 다르다. 이의 개선을 위해서는 IT 문화의 교류가 최우선이다. 여기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중심의 인도식보다는 IT 인프라에 기초한 서구식 모델, 즉 아일랜드식의 적극적 대외개방 및 외자유치를 통한 IT 산업 유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북한 IT를 바라보는 공통된 시각이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치지 않고 정보화로 곧장 직행하겠다는 ‘김정일식 축지법’ 앞에는 IT 인프라 기반, 바세나르체제 및 대북 전략물자 반출 제한 등 험준한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축지법을 터득하는 데 오랜 수련이 필요하듯이 이러한 장애물을 해결하는 데는 김정일의 개방의지와 북한이 처한 현실극복 등 고갯마루를 숱하게 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 IT 협력을 위한 여건개선 작업으로 기술용어 표준화, 기술인력 교류, 북한의 기술인력 양성 및 활용을 위한 정부의 정책과 지원, 북한의 우수인력 활용방안 모색 및 남북 커뮤니케이션 인프라의 통합 등이 진행되고 있다. 또 IT전문서적 보내기, IT 합자회사 및 대학 설립 등을 통해 통일비용 절감과 IT 경쟁력 증진을 위해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그러나 개방과 체제 유지의 양면성이 존재하는 북한 사회에서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IT 인프라 조성을 위해서는 개념적이고 원칙적인 접근보다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이 필요할 때다.

 우리나라가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뤄오면서 정보강국을 건설해온 데는 그동안 치른 대가와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을 통한 문화적 개방 기반의 세계화가 선결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월드컵에서 중국의 올림픽까지 동북아 국가들이 IT 산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게 될 시점에서 북한의 IT 종사자에게 세계화를 유도할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조선 강국인 우리나라가 떠다니는 호텔로 불리는 호화유람선을 건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호텔문화를 체득한 기술인력이 부족한 데서 기인했듯이 폐쇄된 체제에서 고립된 문화를 구축하고 있는 북한으로의 진출보다는 북한의 우수 기술 인력이 개방된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21세기 정보강국의 한 축에 설 통일한국을 위해서는 지금의 월드컵부터 2008년 중국의 올림픽까지 꾸준히 북한의 IT 인력에게 개방적 문화 체험을 선물하되 문화적 동질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IT 인프라 조성을 위한 대북 진출과 제3국에서의 합작사업은 지속적인 추진이 요구되지만 현실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 표준제정에서의 논란을 야기할 소지를 내포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북한 기술인력의 한국 유입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또 이를 통해 IT 문화 공유를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화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북한 기술자의 한국 IT 현장에서의 장기 체류를 유도해 우수 기술인력의 현실적인 활용과 함께 IT 인프라에 대한 폭넓은 사고와 지식을 공유하고 세계 표준을 점유해갈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