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석 새롬기술 대표이사 juno@serome.co.kr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재 한국 정보기술(IT)이 발전하는 속도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이 수백만 가정에 보급돼 대도시뿐 아니라 농어촌에서도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무직 종사자는 물론 주부나 초등학생도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다.
비단 인터넷뿐만 아니다. PC를 이용한 온라인게임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발전하고 있다. 또한 휴대폰을 이용한 데이터서비스가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해 휴대폰의 고속화 및 컬러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머지않아 현재의 PDA 기능에 필적하는 멀티미디어 휴대폰이 대량보급될 전망이다. 이처럼 한국은 IT에 관한 한 다방면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국가다.
그러나 필자가 느끼기에 한국의 IT에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 특정한 몇 가지 기술이나 서비스가 주목받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채워져야 할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은 사회적 의식이나 그것의 산물로서의 제도와 관습과 관계된 매우 본질적인 결함으로 우리 젊은 세대가 붙잡고 씨름해야 할 과제와도 연관돼 있다.
다름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사회’에 관한 의식이다.
IT를 논하는 자리에서 웬 사회학적 주제인가 할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에 관해서 우리 사회가 확고한 공동인식(consensus)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한국 IT산업의 경쟁력은 장기적으로는 약화될 것이다.
한국은 ‘all-or-nothing’의 사회적인 측면이 강하다. 특정영역에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은 비즈니스의 기본이지만 합리적인 룰을 정하고 그 룰 아래서 함께 시장을 키우는 ‘competitive cooperation’이 없다면 선진국의 명망있는 IT기업들과 같은 좋은 기업을 우리 사회가 배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힘있는 기업들은 외국 업체에 대해 때로는 기꺼이, 또 때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 업체가 요구하는 라이선싱 정책을 수용해왔다. 그러나 국내 업체가 개발한 기술에 대해서는 소스코드를 포함한 일체의 권리를 가져가는 조건으로만 계약을 체결하려고 한다. 이런 풍토에서는 원천기술을 통해 솔루션 개발업체가 되려는 국내 벤처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 적어도 법률적·제도적으로는 그렇게 된다. 그리고 유망한 국내 벤처기업들이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면 결국 또다시 외국 업체에 기술을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니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예로 국내 업체들은 다른 업체와 협력해 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을 기반으로 합리적인 장비 구매를 시행해 전체적으로 시장을 활성화하는 의지와 경험이 부족하다. 표준을 만들면 누구든 그 시장에 들어올 수 있고, 따라서 마치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기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실력있는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해 좋은 장비를 많이 만들어내면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돼 시장이 빠르게 확대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국제기구(ISO·ITU)나 국제적인 포럼(IETF·3GPP)이 다량의 표준문서를 쏟아내는 것은 선진국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체득한 경험을 통해 그 방법이 정말로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종속관계를 이루면서도 선진국이 된 일본의 예가 있어서 첫번째 비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고,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이 비표준으로 세계를 석권하는 회사가 있어 두번째 비판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예외와 전형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한국 IT기업들은 서비스업체와 솔루션업체를 막론하고 기술개발의 교과서와도 같은 위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한 올바른 관행을 일단 습득하지 못하면 담을 막 넘으려다 힘이 빠져서 미끌어 내려가는 서커스의 원숭이와도 같은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모르기는 해도 세계에는 이와 같은 예가 적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