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벤처캐리털리스트와 윤리

 ◆우리기술투자 곽성신 대표(kwakss@wooricapital.co.kr)

  

 자본시장의 발달사를 보면 전세계에서 가장 투명성이 높고 모범적인 자본시장인 미국 증권시장도 초기에는 주식매점 및 공매도에 의한 주가조작이 일반화돼 있었고 심지어 투기세력이 자신들의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시의원, 판사 등 관련 공무원에게 뇌물 및 이권 제공 등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29년 대공항 이전까지 미국의 증권시장은 1820년 운하회사 주식 투기로부터 시작돼 1840년대 철도회사, 1920년대 항공회사에 이르기까지 각종 주식투기와 주가조작으로 얼룩져 있었다. 남북전쟁의 영웅이자 18대 대통령을 지낸 율리시스 그랜트도 협잡군에게 속아 증권회사를 설립했다가 많은 투자가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도 파산하는 불행을 겪으면서 증권시장은 일반 국민이나 도덕성이 높은 정치인들에게는 악의 소굴로 비치기도 했다.

 이러한 자본시장의 비윤리성, 비합리성은 1929년 대공항의 원인을 제공했다.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증권시장 개혁을 추진하면서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설립해 시세조정을 불법화시켰다. SEC 설립 이후에도 ‘기업인수 및 합병(M&A)’에서 내부자 거래에 의한 부당이득 취득, ‘인터넷 주식 열풍’에서 볼 수 있었던 주식투기, 최근 메릴린치증권 애널리스트가 저지른 주식 추천 비리 같은 비도덕적 행위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마이클 밀켄에게 내부자 거래와 관련해서 10년형과 6억달러의 벌금을 선고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국 사법당국은 주식 관련 불공정 행위를 한 투자자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증권시장 참여자의 도덕성과 윤리기준에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은 메릴린치사가 주도해 증권회사 지점망을 확대, 일반투자자를 증권시장에 대거 참여시킨 이후 부터다. 그전까지 주가조작의 피해는 일부 전문 투자가들에 국한됐으나 주식투자가 대중화된 후부터 피해자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증권시장도 짧은 시간에 급속한 성장을 거치면서 미국 증권시장과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가조작 작전에 대한 금융당국의 조치는 매우 느슨했다. 주식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대규모 투자자, 소위 ‘큰손’들은 그룹을 만들어 특정 주식을 매점해 시세차익을 얻는 것을 주식 투자의 기본으로 생각했다. 최근 증권관리위원회와 사법당국이 주가조작 사범을 엄격하게 처벌하면서 증권시장 관계자와 거액 투자가들은 매우 당혹해 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시장의 사회·경제적인 중요도를 고려한다면 당연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증권시장에 대한 일반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진다면 시장은 급속하게 붕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은 상장 이전 주식에 투자하고 기관 및 일반투자자의 투자자금을 위임받아 이를 운영하면서 자본시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이 시장은 투자 정보의 완전공개와 무제한의 유통이 불가능해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존재하고 거래가 대부분 개인간(privately)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개된 자본시장보다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최근 벤처캐피털협회가 중심이 돼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윤리기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투자자금의 모집, 투자대상의 결정, 투자기회 배분 등에 있어서의 이해상충 방지 및 투자정보나 거래행위가 사적 이익을 취하는 데 유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내부감사인을 통한 감시와 리스크 관리, 합리적인 보수체계 등이 이에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위반하는 벤처캐피털회사와 심사역에는 상응하는 제재조치가 내려질 것이다. 벤처캐피털 윤리기준 제정을 통해 산업의 선진화가 이루어지고 신뢰받는 벤처캐피털로 탈바꿈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