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베네통그룹이 적자에 허덕이는 산하 이동통신업체의 처리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이를 매각하려 해도 구매자가 나서지 않고, 매각에 실패할 경우에는 자칫 베네통이 지난해 매입한 텔레콤이탈리아의 지분이 무효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EC(European Commission)는 베네통과 피렐리가 공동으로 텔레콤이탈리아를 매입한 것을 승인하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베네통 산하의 이동통신업체인 블루(Blu)를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기존의 통신업체 소유주가 텔레콤이탈리아를 매입해 야기될지도 모를 독점의 소지를 없앤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베네통은 그간 이탈리아에 진출한 여러 통신업체들과 블루의 매각협상을 벌였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블루가 3세대 이동통신사업권 획득에 실패한 별 매력이 없는 회사인데다 복잡한 소유구조로 인해 경영사정 또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루는 베네통그룹이 직간접적으로 41%의 지분을 소유한 것 이외에도 영국 BT가 20%, 기타 6곳의 이탈리아 기관투자가들이 각 7%의 지분을 보유하는 등 복잡한 소유구조를 갖고 있다.
이처럼 블루의 매각이 어려워지면서 베네통은 최근 새로운 자구책을 발표했다. 블루 전체를 매각하는 대신 그 자산의 일부만을 팔아 영업규모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EC는 이런 베네통의 자구책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C 경쟁위원회의 마리오 몬티 커미셔너는 “텔레콤이탈리아의 매입승인이 블루의 매각을 전제로 이루어진 만큼 베네통이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텔레콤이탈리아의 매입승인을 취소하겠다”고 경고했다.
만에 하나 EC가 베네통의 텔레콤이탈리아 매입을 취소시킬 경우 그 파장은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베네통-피렐리 체제로 경영정상화를 이루어가고 있는 텔레콤이탈리아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텔레콤이탈리아가 주도하는 이탈리아 통신시장 전반에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베네통이 블루의 매각으로 곤경에 처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적극적으로 베네통을 지원하고 있다. 이탈리아 통신장관 모리지오 가스파리는 몬티 커미셔너의 발표가 있은 직후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을 통해 “현재 블루의 매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업체는 없으며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블루의 파산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더욱이 그는 이런 상황에서 블루 전체를 매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EC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탈리아 정부가 EC를 설득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통신시장 독점문제에 관한 한 터프하기로 소문난 EC 경쟁위원회가 이런 이탈리아 정부와 베네통의 입장에 대해 어떤 대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베네통의 블루 매각수순이 다음에는 또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가는 이유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