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 바람은 동쪽으로부터 불까?’
미국 동북부의 보스턴 하이테크 단지 외곽 순환도로에 인접한 빌즈 피자가게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줄서 기다리는 행렬은 이곳 데이터 저장장치회사인 EMC의 해고가 지속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노스 앤도버 주변 여러 마을에서는 루슨트테크놀로지스의 공장매각 계획에 대한 우려가 높다.
2년전 보스턴을 뜨겁게 달궜던 사이버지구의 중심부인 사우스 스트리트 지역에 있던 웹 컨설팅업체는 다 떠나갔다. 가죽 거리로 알려진 주변 지역에는 이제 ‘임대’ 팻말만이 여기 저기 걸려 있을 뿐이다. 그레이트 보스턴은 나스닥의 부침과 함께한 하이테크 지역으로 실리콘밸리와 많은 닮은 꼴이다. 보스턴과 실리콘밸리 두 지역 모두 비싼 주거비와 교통난, 기술과 통신산업 지출 격감으로 고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보스턴은 실리콘밸리보다 침체에서 더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추세다.
보스턴은 과거 모험을 싫어하고 연방정부와의 조달계약 의존도가 높으며 협동심이 부족해 세계적 하이테크 기업을 육성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80년대 ‘매사추세츠의 기적’이라 불린 경제호황은 은행위기와 왕컴퓨터의 파산, 컴팩컴퓨터에 넘어간 디지털이퀴프먼트(DEC) 매각으로 대표되는 미니컴퓨터 산업 붕괴로 끝장이 났다. 하지만 대보스턴은 하이테크 이외 분야로 산업이 다양화돼 있고 하버드대학과 MIT대가 있는 케임브리지를 중심으로 생명공학산업이 발달해 최근 들어 경기회복에 대한 아직은 조심스런 낙관론이 팽배해 있다.
이 지역의 금융서비스, 교육, 의료산업은 경제의 다양화에 한몫 했다. 이 지역 실업률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지난 3월 실업률이 4.2%로 미국 전체 평균 실업률 5.7%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실리콘밸리 중심지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실업률은 3월에 7.6%에 달했다.
MIT대 수학교수와 그의 제자가 창업한 웹서비스 회사인 아카마이의 폴 사간 사장은 “이곳 하이테크 경기도 실리콘밸리처럼 나쁘지만 이곳에서는 하이테크가 전부가 아닐 뿐 아니라 기술이 문화까지 지배하지는 못한다”고 실리콘밸리와 다른 점을 설명했다.
사간 아카미아 사장은 “이런 점이 이 지역의 기업정신과 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실제 일부 지역의 기업활동은 아직도 활발하다”고 전했다. 보스턴의 뮤추얼펀드는 경기침체기에도 계속 번영을 구가해왔다. 레이시언 등 방산업체도 국방 예산 증액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종합병원 에릭 프롬 전문의는 “이곳은 의료산업의 메카”라며 “연구자금을 얻기가 아주 좋다”고 꼽았다. 보스턴은 하버드의대와 부속 병원들 덕택에 미국의 다른 도시보다 미 국립보건원(NIH)의 지원금을 더 많이 받는 지역이다. 지난 회계연도 NIH 기부금은 12억달러에 달했다. 하버드와 MIT는 자체 대학발전계획을 세워놓고 학생수를 늘리고 있다. 사간 아카마이 사장은 “교육산업은 아주 큰 산업으로 고급 식당과 호텔이 대학 주변에 들어서게 된다”고 밝혔다.
보스턴은 다른 도시처럼 유휴 사무실이 넘쳐 사무실 임대료도 떨어지고 있다. 첨단기술단지로 꼽히는 ‘루트128’과 매사추세츠 교차로 근처의 상업용 빌딩 공실률은 지난 분기 30%가 늘어났다. 하지만 일부 특수 지역에서의 사무실 수요는 아주 높다. 특히 생명공학 연구공간의 공실률은 1% 미만에 불과하다.
쿠시만&웨이크필드의 톰 콜린스 뉴잉글랜드 지역 담당 부사장은 “보스턴은 사정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며 “대부분 사람이 현재 경기가 지난해보다 좋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에는 일거리가 없었는데 올해는 마케팅부서가 바빠졌고 부동산 중개인도 바빠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달 초 스위스 제약회사인 노바티스가 케임브리지의 테크놀로지광장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의약품개발센터를 설립한다고 발표한 것도 큰 호재다. 세계적 규모의 이 연구센터에는 400명의 과학자 등 모두 900명의 연구인력이 의약품 개발에 종사하게 된다. 대니얼 바셀라 노바티스 CEO는 “케임브리지에 입지하기로 한 것은 점점 어려워지는 과학인재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스턴은 실리콘밸리처럼 인재유치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시 말해 생활의 질의 문제다.
중립적 싱크탱크인 뉴 커먼웰스 매사추세츠 연구소 닐 멜로 섭외국장은 “소득이 치솟는 주거비를 따라갈 수 없는 점이 난제”라고 밝혔다. 이런 사정이 언제 호전될지 장담하는 경제전문가는 없다. 그레이트 보스턴 지역도시계획기구의 데이비드 소울 사무국장은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교회에서 이전처럼 몇명이 해고되고 담보채무를 못갚았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며 “일요일 신문에 지난 80년대처럼 15∼20쪽의 주택 경매물건 목록도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조사회사인 벤처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매사추세츠는 캘리포니아처럼 벤처자본 투자액이 지난 99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올 1분기 매사추세츠주에 투자된 자금은 7억3400만달러로 이전 분기보다 22.2%, 전년 동기보다는 43.1%가 각각 줄어들었다.
<박공식기자 ks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