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IT연구개발의 균형발전

 ◆박원훈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이 태부족했던 80년대까지는 의학분야가 한국과학재단 공식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이는 병원과 의사는 상대적으로 유복해 기초의학 연구는 의학계에서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통념적 판단에서였다. 지금와서 보면 과학기술 전체를 내다보지 못한 좁은 시야 때문임을 뉘우치게 되며 이로 인해 생명과학, 의료기술의 발전이 뒤처지지 않았나 한다. 그런데 오늘에는 이런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정부는 미래유망기술로 6T(IT, BT, NT, ET, ST, CT)를 선택해 집중지원키로 했는데 이 중 과거부터 중요시돼 온 것은 물론 IT다. 그것은 반도체, CDMA 등의 개발을 축으로 우리의 전자통신산업이 한국 제1의 산업으로서 세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전자통신분야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인원이나 연구개발 예산 면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최대의 연구소다. 정규직 인원이 약 1900명이고 2001년 연구계약액은 3290억원이다. 계약고의 구성비를 보면 정보통신부 수탁액이 79.0%, 과학기술부 등 타부처 수탁액이 2.5%, KT등으로부터의 민간 수탁액이 17.0%, 정부출연금은1.5%에 불과하다. 출연기관이지만 출연금은 상징적으로만 지원되고 있는 특수연구기관인데 이는 연구비 조달에 유복함을 반영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관리하는 정보화 촉진기금으로부터 대부분의 예산이 지원되고 있는데 ETRI 연구계약액의 70%다.

 한편 ETRI의 연구개발 사업에서 원천기초연구의 비중은 연구투자액을 기준으로 하면 8.8%며 91.2%는 응용개발연구다. 정보화 촉진기금으로부터의 지원액 2322억원 중 205억원, 나머지 정부출연금 51억원과 과학기술부의 창의적 연구지원사업 및 국가지정연구사업(NRL)이 원천기초연구에 해당된다. 물론 민간수탁사업은 전부 응용개발연구다.

 과학기술계는 IT분야는 연구비가 풍성하다는 통념을 갖고 있다. 한국 제일의 강력한 전자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지금까지 IT분야 투자를 우선으로 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연(연)들의 대정부 예산 투쟁에 있어서도 ETRI가 특수 케이스가 돼 ETRI를 제외한 통계 및 구성비를 별도로 표시할 정도다. 이것은 ETRI의 정부출연금이 전체 수탁고의 1.5%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ETRI로서는 연구소가 소속된 산업기술연구회와 국무조정실보다는 정보통신부의 정보화 촉진기금에 신경을 더 쓰게 됨은 당연하다.

 문제는 바로 이런 메커니즘에 내재돼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계획, 특히 원천기초연구와 응용개발연구의 균형발전을 종합기획하는 부처는 과학기술부(국가과학기술위원회 간사부처)고 그 수행자로서 출연(연)의 책임이 크다. IT분야가 주 연구영역인 ETRI가 특수목적으로 조성된 정보통신부의 정보화 촉진기금에만 의존케 된다면 연구개발 포트폴리오상 불균형이 초래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ETRI의 인적 구성, 인력 훈련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목적사업이 종료되는 경우 새로운 연구영역으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이 커짐을 의미하며 또 새로운 미래에의 대응력이 약함을 뜻한다.

 ETRI는 원천기초연구의 비중을 20%로 상향시켜 미래에 대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출연금이 더 많이 지원되든지, 정보화 촉진기금이 기초연구에 더 많이 할애되든지, 아니면 정보화 촉진기금 같은 각종 과학기술 연구개발 기금도 별도로 관리하지 말고 과학기술이라는 총체적인 큰 틀 에서 관리되도록 제도를 개선해 원천기초연구비에 더 많이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국가 과학기술 5개년 계획에는 2006년까지 정부예산의 20% 이상을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옛날의 의과학 분야처럼 그 동네는 돈이 많다고 연구개발대상으로 경원시하거나 무관심했던 과오가 IT분야 원천기초연구에 답습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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