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하이테크` 봄은 오는가(1)오긴 오나?

 대부분의 경제 지표가 바닥을 찍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경제 성장률이나 산업 가동률, 수출량 등 지표를 보면 지구촌의 경기는 하이테크 산업 버블로 촉발된 하강 커브의 변곡점을 지나 상승세로 반전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정작 신경제의 선두에 선 첨단 산업은 해빙기에 접어든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실적은 나쁘고 사업 구조조정에 따른 감원 소식은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다.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경기 회복을 갈망하는 전세계 ‘IT산업인’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회복세를 띤 경제지표와 암울한 실물 경기의 갭은 마치 그랜드캐니언의 거대한 협곡과도 같아 보인다. 정보기술(IT)과 같은 하이테크산업 경기의 바로미터는 실리콘밸리다. 세계 하이테크의 심장은 여전히 ‘밸리’임에 변함이 없다. 밸리의 파급력과 비교할 만한 국가나 지역은 아직까지는 없다. 밸리에 봄이 온다면 전세계 IT산업계의 봄은 멀지 않았다고 봐도 된다. 전세계 IT산업계가 고대하고 있는 경기회복은 과연 언제쯤이 될지,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업체를 현지 취재를 통해 8회에 걸쳐 알아본다.편집자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빠져나온 차는 그 유명한 ‘101번’ 도로에 올라섰다. 실리콘밸리의 중심도시 팰러앨토를 지나 목적지인 새네제이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정말로 미국, 아니 세계 정보기술(IT)의 심장부로 하이테크 부문을 이끌었던 실리콘밸리가 가사상태에 빠졌을까”하는 궁금증이 가장 컸다.

 현지 언론은 요즘의 실리콘밸리 상황을 한마디로 ‘실락원(Paradise Lost)’이라고 표현했다. ‘이 지적이 맞아떨어질지, 혹은 과대포장해 일부 인사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인지’ 도로를 달리는 동안 보이는 차창밖 풍경은 ‘현실은 왠지 더 암담할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가슴 한 구석에서 자라나도록 만들었다.

 현지 IT홍보업체 호프만 김수연 (한국) 지사장이 내 상상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지난해는 실리콘밸리 역사에서 최악의 해로 기록될 만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실리콘밸리내 150개 대기업의 적자는 무려 90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 기록했다는 것이다. 한해 적자만으로 8년간의 누적된 흑자를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매출도 지난 85년이래 처음으로 감소했다. 지역내 업체 종업원들의 평균임금도 계속 하락하고 있고 무엇보다 자국 경기 회복에 대한 불투명성이 이 곳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어깨를 찍어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분기 미국의 GDP 성장률은 5.6%를 기록해 분기 대비 최근 수년중 가장 높았지만 미국 증시, 특히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시장 부진이 상반기 내내 이어질 것이란 우려섞인 전망이 계속되고 있다. 경기후퇴가 끝났으며 불황을 빠져나오고 있다는 얘기가 오래 전부터 대두되었던 만큼 지금쯤은 경기 회복속도 둔화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실질적인 지표가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시기는 고사하고 가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i파크 제프리 모리슨 소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황과 불황을 모두 겪은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얻은 경험은 한층 귀중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자부심을 지적했다. 예전과 같은 영화는 힘들겠지만 전세계 하이테크 시장을 흔들 수 있는 변화는 실리콘밸리만이 만들어냈고 앞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모리슨 소장은 일부에서는 사업을 다양하게 가져가는 기업도 생기고 있고 실리콘밸리 바깥을 겨냥하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어쨌든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새로운 물결의 도래를 체감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물결은 생명공학이든, 나노기술이든 IT에 기반을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실리콘밸리에서 IT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하이테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에 기대고 있는 듯도 하고 올해 말이면 IT경기가 바닥을 칠 것이라는 투자업계의 전망에 의지하고 있는 듯도 했다. 

 실리콘밸리 시가지에 도착한 시각은 해가 태평양으로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6시경이었다. 밸리에 어둠이 덮이기 시작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연구소들이 밝히는 불은 여전히 훤했다.

 <실리콘밸리(미국)=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