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신명나는 일이 연거푸 터지고 있다.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월드컵 개최와 이를 더 흥분하게 하는 한국 축구에 대한 희망. 5회 연속 출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월드컵 예선에서 이겨보지 못한 만년 하위팀 코리아가 돌변했다. 누구도 한국 축구의 16강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은 없다. 세계 수준급으로 한국 축구의 실력은 온국민을 설레게 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세계 최고 권위의 칸영화제에서 날아든 낭보. 몇 년 전 ‘쉬리’로 시작한 한국 영화의 급속한 발전이 눈부시다.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얘기조차 꺼내기 민망하던 한국 영화들이 사상 최대의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며 시장을 탈환했다. 급기야 임권택 감독이 세계 최고 권위의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것도 가장 한국적인 영화 ‘취화선’으로 세계 무대를 흔들었다. 비단 이 영화 한 편뿐만이 아니다. 이미 한국 영화는 국제 ‘필름 마켓’에서도 수준을 인정받아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 축구와 한국 영화의 발전을 기뻐하기보다 과거를 한 번 돌이켜보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고질적인 골문 처리 미숙, 경기 중반 급격한 체력 저하, 언제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세계 수준의 기술로 한국 축구는 월드컵 참가에만 만족해야 했다. 98년 미국 월드컵의 대멕시코전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지인이 있다. 그는 역전패를 당한 날 눈물을 삼키며 안타까움에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한국 영화도 마찬가지다. 저예산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부실한 시나리오, 낙후된 영화기술로 “방화를 보느니 TV드라마를 보겠다”는 조롱을 받아가며 수모의 세월을 살아왔다. 수준에 못미치는 저급 한국 영화는 세계 진출은 고사하고 내수시장마저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저급 국내용’이라는 것이 한국 영화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 축구와 한국 영화는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발전했다. ‘서프라이즈 코리아’의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돌이켜보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누구도 한국 축구의 16강은 염원일 뿐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 영화의 세계화도 요원한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한국 축구와 한국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변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관심과 투자’라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급격하게 변곡점을 통과한 것이다.
월드컵과 때를 맞춰 전세계 40여개 다국적기업의 CEO가 서울에 모였다. 이들이 감탄하는 것은 월드컵의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한국의 정보기술(IT) 발전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한국을 ‘세계 정보통신 강국’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같은 명예가 관심과 투자의 산물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찬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IT산업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관심과 투자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IT를 마치 사양산업처럼 취급하고 있다.
비록 속앓이를 하고 있지만 IT는 한국 경제 도약의 발판이다. 대도약을 시작한 한국 축구와 한국 영화를 거울삼아 기술 한국의 견인차가 될 IT정책의 방향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경우 디지털경제부 차장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