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국 한국도메인기업협회장
정부가 인터넷주소자원관리법 제정을 준비중이다.
90년대 초 수십개밖에 없던 국내 도메인 수가 벌써 50만개에 육박하고 있으며 호스트 수도 70만개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니 정부가 나서서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요컨대 수많은 국민이 사용하는 중요한 요소를 정부가 관리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비공식 루트를 통해 제안된 입법안의 초고를 보면 문제점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국내 도메인과 국제 도메인은 물론 다른 나라 도메인까지 국내인이 등록하거나 국내 사업자를 통해 등록된 경우 모두 국내법의 적용을 받게 돼 있다. 극단적으로 보면 독일 도메인을 독일 사람이 우리나라 사업자를 통해 등록하게 된다면 그 도메인은 독일법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법을 적용받게 된다는 얘기다.
또 일반 최상위 도메인(gTLD:generic Top Level Domain)이라 불리는 닷컴(.com), 닷넷(.net) 등은 ICANN(the 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관리·유지되고 있다.
일반 최상위 도메인을 소유한 이들 대부분은 ICANN에서 공인받은 업체들, 일명 레지스트라들을 통해 도메인을 등록했다. 그런데 정부가 추진중인 새로운 주소자원관리법 초안은 이들 공인받은 레지스트라들이 다시 정보통신부나 정보통신부가 지정한 기관을 통해 재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으니 이 또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도메인 관리를 이런 식으로 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한 군데도 없다.
뿐만 아니다. 인터넷주소자원관리법 초안은 도메인과 유사한 서비스인 인터넷키워드, 한글인터넷주소, 무선 숫자 도메인, 음성 도메인 등까지 관리대상으로 삼고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인터넷주소의 개념이 여기까지 확대된다면 인터넷에 관해 정부의 입김이 미치지 않을 곳이 없을 것 같다.
정보시스템에 접근하기 위해 인터넷주소를 식별하는 도구인 도메인뿐 아니라 인터넷주소를 검색하는 검색엔진, 인터넷주소를 찾아가는 길을 제공하는 통신사업자 등 인터넷과 관련된 모든 기관과 업체가 인터넷주소자원관리법의 관리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주소자원에 관련된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할 회사들이 개발보다 정부 눈치보기에 더 신경쓰는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몇달, 몇년에 걸쳐 주소자원과 관련된 상품을 개발해도 정부가 아니라고 하면 도루묵이 될 형편이니 말이다.
정부의 이번 입법시도는 남의 나라에서 만든 것, 국제적으로 잘 통용되고 있는 것을 자신의 테두리로 귀속시키려고 하는 시도처럼 보여 걱정이 앞선다. 더구나 법을 만들어 한꺼번에 판을 정리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민주적인 태도가 아니다.
인터넷주소자원과 관련해 일부 혼란상이 없는 것은 아니며 의사결정과정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자체적인 조정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 돼야 맞다. 인터넷의 발생과정이 그렇고 이렇게까지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오픈된 시스템이 제 역할을 잘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끌벅적한 장터를 만들고 생산자와 유통업자 및 소비자가 서로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지원과 조정자 역할을 맡는 것이 작은 정부를 만들고자 하는 정부의 뜻에도 부합한다고 본다. 정보통신부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