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미국-`M&A의 마술사` TPG서 배워라!

 ‘기업 M&A, TPG를 벤치마킹 해라.’

 지난해 11월 1달러 지폐 6장이 들어 있는 페덱스 소포가 샌프란시스코 금융가에 위치한 멋진 고층빌딩 33층을 떠났다.

 독특한 기업인수 전문업체가 이례적인 거래를 특이한 방식으로 마감했다.

 텍사스 퍼시픽 그룹이 세계 4위 실리콘 웨이퍼 제조업체를 훈제 칠면조 샌드위치 가격으로 사들인 것이었다. 미주리주에 본사를 둔 MEMC 일렉트로닉 머티리얼즈의 시가총액은 2억4500만달러, 은행 예금은 1억달러였다. TPG는 이런 회사를 단돈 몇 푼으로 사들인 것이다. MEMC의 현 시가총액은 구조조정과 반도체산업의 회복 조짐에 힘입어 15억달러로 급증했고, 적자는 격감했다. 계획대로 될 경우 TPG는 2∼3배 수익이 최고로 간주되는 이 분야에서 투자금의 수백만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금 및 역사적 이유 때문에 포트워스에 본사를 두고 투자팀만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있는 TPG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익은 회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 회사가 현재나 과거 투자한 회사 중에는 크류, 벌링거, 밸리, 델몬트 아메리카 웨스트 항공, 컨티넨탈 항공, 페트코, 옥스포드 헬스 플랜 등 낯익은 기업들이 많다.올 봄에는 버거킹과 퀘스트 커뮤니케이션스가 피인수 목표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TPG는 응찰 가격이 너무 비싸 퀘스트 인수전에서는 철수한 상태다.

 TPG가 이렇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전략적이다. TPG는 자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고, 경쟁업체에 쉽게 정보를 알려주는 게 바보짓이라는 생각으로 그동안 ‘공사중’ 안내문을 내걸었던 웹 사이트를 폐쇄했다.

 창업 파트너인 데이빗 보더맨, 짐 쿨터, 빌 프라이스는 대부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회피한다. 쿨터는 인터뷰 요청을 받고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투자건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발언을 비보도로 해줄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TPG는 몸을 낮춰 움직이고 있지만, 수억달러를 투자한 캘리포니아 공공기관 퇴직연금 등 주요 개별 투자자들에게는 높은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아시아, 유럽은 물론 벤처캐피털, 헤지 펀드 등을 아우르는 각종 펀드 형태로 100억달러 이상을 관리하고 있는 TPG는 미국 최대 투자업체 중의 하나로 연평균 30%의 수익률로 상위 10%에 든다. TPG는 지난 90년대 중반 컨티넨탈항공의 인수로 탄생한 회사다. 당시 포트 워스 소재 로버트 바스그룹의 투자를 담당하고 있던 보더맨은 파산에 직면해 있던 이 항공사의 인수를 원했지만, 바스는 거부했다. 이에 따라 보더맨은 93년 오른팔이었던 스탠퍼드 MBA 출신 짐 쿨터와 함께 GE 캐피털 출신의 빌 프라이스와 손을 잡고 에어 파트너스를 설립한 뒤 컨티넨탈항공을 인수했다.

 에어 파트너스는 회사이름을 곧바로 TPG로 바꿨는데, 베이지역 학교에 다녔던 쿨터와 프라이스가 샌프란시스코를 새 근거지로 선택하는 바람에 ‘퍼시픽’이란 말을 이름에 집어넣었다. 보더맨은 월요일 열리는 회사의 파트너 회의에 보통 전화로 참석한다. TPG는 수년간의 부침을 겪은 끝에 컨티넨탈항공 주식을 11배나 비싼 가격으로 매각함으로써 투자업체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최근 이들 세 사람은 복잡하고 위험해 다른 업체들은 시도하기 어려운 투자에 골몰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인수업계의 대부격인 헬먼&프리드먼사의 워렌 헬먼은 “컨티넨탈항공을 처음 검토했을 때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TPG는 엄청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회고했다. 업계 관측통들은 전용 항공기, 비싼 옷, 고함 등으로 상징되는 뉴욕 소재 인수업체들과 캘리포니아 북부 업체들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옥스퍼드의 놈 페이슨 CEO는 “TPG가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던 4년 동안 이들이 적대적이 되거나 이성을 잃는 장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첫 분기에 5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봤을 때도 이들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TPG의 피투자업체로 온라인 여행 사이트인 핫와이어를 경영하고 있는 칼 피터슨 전 파트너는 “TPG에는 남을 비방하는 풍토가 전혀 없다”면서 “투자 결정을 할 때에도 기업인의 품성을 고려한다”고 전했다. 본더맨, 프라이스, 쿨터가 TPG의 정점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투자결정은 파트너들 모두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 사람만 심각하게 반대해도 투자는 무산된다.

 TPG의 기술그룹을 이끌고 있는 존 마렌은 “위에 세 사람이 있고 나머지 직원들이 밑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파트너들은 협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별 투자실적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투자결정은 정밀한 경제분석과 함께 시작된다. TPG는 매분기 전 미 재무장관으로 현 하버드대 총장인 로렌스 서머스 같은 석학들을 불러 상세한 경제전망을 한다. 그 뒤 TPG의 파트너들과 연구원들은 클린턴 행정부의 건강보험제도 재편, 북미자유무역협정, 테러 참사에 따른 보험업계의 지각변동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연구한다. 하지만 TPG도 하이테크 거품이 꺼지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실패한 투자사례로는 파산보호를 신청한 반도체 제조업체 질로그를 들 수 있는데, TPG는 질로그에 대한 투자로 1억18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 TPG는 통신업계 침체로도 타격을 입어 컨버전트와 베라도를 비롯한 4개 통신회사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해밀튼 레인 어드바이저스 CEO로 TPG의 투자자인 마리오 지아니니는 TPG가 투자 실수를 깨닫고 다른 업체들보다는 빨리 손실로 처리했다며 TPG의 강점을 설명했다. <코니 박 기자 cony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