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초고속 인터넷리더 한국을 배워라"

 영국 등 EU 각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고작해야 3∼5% 정도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는 미국에서도 아직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10%에도 못 미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체 가구 중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률이 40% 정도 된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컨설팅사 가트너(http://www.gartner.com)는 최근 보고서(한국으로부터의 교훈: 갑작스레 등장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분야의 리더)에서 한국 인터넷 보급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두 가지 배경을 시의적절한 정부 정책과 비교적 공정한 경쟁이 보장됐던 시장 환경에서 찾고 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한국의 상황

 2001년 말 현재, 한국의 고속 인터넷 가입자수는 2000년 말의 390만여명에서 크게 증가한 780만명에 달했다. 이러한 가입자수의 폭증은 시장보급률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한국이 전 세계 고속 인터넷 분야의 리더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대다수의 회선은 가정용으로 보급되었다. 이제 40%의 한국 가정에서 초고속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며 이점은 한국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진정한 의미의 고속 인터넷 서비스 대중 시장으로 등극시켰다.

 가트너데이터퀘스트는 한국의 전체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수(고속 인터넷과 저속 인터넷)가 2001년 말을 기준으로 19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초고속 인터넷의 대명사인 비동기디지털가입자회선(ADSL)을 이용하는 인구만 약 520만명을 상회하고 있다. 또 그 뒤를 이어 케이블 모뎀을 이용하는 인구가 약 220만명, 이더넷을 이용하는 인구가 43만명을 각각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한국에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비교적 저렴한 가격수준과 서비스 업체들간 치열한 경쟁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고속 인터넷 서비스 이용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전화접속 요금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전화접속 인터넷접속 요금은 월 8∼9달러 수준이지만 종량제 시내전화 요금을 감안하면 상시접속 가능한 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더 저렴해진다.

 기본적인 정액제 고속 인터넷 서비스는 2Mbps 서비스의 경우 월 19달러부터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고속 인터넷 서비스 요금은 19∼35달러 정도이다. 고급 서비스의 경우 최대 8Mbps의 속도로 상시접속 가능한 DSL 또는 케이블 모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최근까지 한국에는 메이저 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수가 7개 업체가 있었지만 서비스 지역에서 모든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업체는 3∼4개 업체밖에 없었다. 지난 18개월 동안은 업계의 통합이 진행되어 일부 업체는 퇴출됐으며 일부 업체는 매각되었다. 결과적으로 다음 3개 메이저 업체가 등장했다.

 -KT(옛 한국통신):ADSL과 이더넷을 이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최근까지 정부 지분 49%의 공기업이었음).

 -하나로통신:경쟁력 있는 시내전화 사업자로서 ADSL과 케이블 모뎀을 이용한다.

 -두루넷:케이블 모뎀을 이용한 고속 인터넷에 초점을 맞춰 설립된 신생 업체다.

 가입자망 개방은 광대역 서비스 경쟁을 촉발시킨 가장 큰 원인이 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최근에야 시행되었다. 아울러 이와 동시에 대형 DSL 시장은 아직 출현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의 광대역 서비스는 통신 기반 인프라에 대한 경쟁업체의 액세스 부족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성장했다.

 한국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한국 광대역 서비스 산업의 성공 뒤에는 공기업 전력회사인 KEPCO의 자회사인 파워콤의 역할이 있었다. 90년대 중반 파워콤은 정부의 지시에 의해 HFC(hybrid fiber coaxial)를 사용한 대체 가입자망 구축을 시작했으며 이 사업은 표면상 케이블 TV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CATV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으며 한국은 아직까지도 CATV 이용률이 낮은 편이다. 이점은 장거리 네트워크와 가입자망 모두에서 광통신망에 대한 과잉 투자로 귀결되었으며 결국 납세자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파워콤이 직접 인프라 공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으며 최종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98년 두루넷과 하나로통신은 파워콤과의 이익 분배 하에 이 대체 가입자망을 이용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에 주목했다.

 이들 서비스 공급자들은 파워콤의 HFC 네트워크에서 케이블 모뎀을 사용하거나 빌딩까지는 파워콤의 광통신망을, 그 후에 빌딩 내에서는 자사의 DSL 접속 멀티플렉서(DSLAM)를 사용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통신 가입자망을 관리했던 한국통신은 고속인터넷 서비스 분야에선 후발 업체에 속하며 99년 말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경쟁 업체가 없던 다른 시장과 달리 한국통신이 시장에 진출했을 때는 이미 라이벌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정부 지원 하에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저가와 빠른 설치를 통해 매우 공격적으로 DSL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 아래 2000년과 2001년에는 사업자들간에 시장 점유율 경쟁을 하면서 격렬한 판촉전이 벌어졌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저렴한 가격으로 광대역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결정은 분명 사업자들의 상업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경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 정부는 한국을 IT 선진국으로 도약시킨다는 목표 아래 하나로통신, 데이콤(시외전화 및 데이터 통신 사업자) 그리고 파워콤 등의 기업들이 인프라에 적극 투자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99년 초까지 이러한 투자 유도는 잘못된 선택으로 보였다. 이유는 기업들이 수익을 못 내고 있었고 상당한 부채로 힘겨워했기 때문이다. 광대역은 이러한 유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로 비쳐졌으며 정부가 광대역 서비스 사업을 권장한 것도 결코 놀랄 것이 없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일궈낸 것은 아니다. 한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광대역 서비스를 도입하기에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인구 밀도가 높고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거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살고 있다. 전화국에서 가정까지의 거리가 짧고 대부분 DSL 서비스 가능 범위 이내에 속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고층 아파트 단지에 거주한다. 아파트 단지의 중앙에 연결된 각 가정의 배선망은 빌딩의 관련 소유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KT 소유는 아니다. 이러한 ‘경쟁력 있는 접속 포인트’까지 광섬유를 매설함으로써 2대 DSL 사업자인 하나로통신은 KT에 의존하지 않고 ADSL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나로 통신의 경우 대개 이 접속 포인트에 DSLAM을 설치하기 때문에 아무런 가입자망 개방 없이도 DSL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밀집되어 있는 도시 환경에서는 고객 당 설치 비용이 적게 들고 한명의 엔지니어가 하루에 20가구까지 회선을 설치하고 고객용 모뎀을 배달할 수 있다.

 ▲인터넷 트래픽의 90%는 국내용이며 이 때문에 한국의 국제회선 접속비용은 매우 낮은 편이다. 미국의 경우엔 이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나라에 따라서는 이 비용이 ISP 비용 구조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인터넷을 상당히 많이 이용하며 아시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을 이용한다. 여기에는 온라인 게임의 인기가 많은 기여를 했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인터넷에 접속해 실행하는 팬터지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러한 게임은 반드시 초고속 인터넷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게임이 사용자들을 온라인 상태로 묶어둔다는 점은 정액제 고속 인터넷의 홍보 판촉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면 한국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광대역 서비스에서의 한국의 성공이 계획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우연에 의한 것이라면 한국의 경험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밸류 체인의 모든 부분에서 실질적인 경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기존 업체들(통신업체 및 CATV)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유럽과 미국 등 다른 시장과 한국이 달랐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

 ▲광대역 서비스 요금과 저속 인터넷 서비스 요금간의 상대적 가격이야말로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다. 애플리케이션은 부차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전체 가구의 약 40%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보급하기 위해 한국이 쏟았던 노력들을 모두 흉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유럽과 북미 지역 통신 사업자들로서는 한국의 사례를 통해 ‘가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