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무선메세징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굿테크놀로지의 `굿링크`
한 때 잘 나가던 실리콘밸리 하이테크 기업들 중에도 최근 불어닥친 정보기술(IT) 불황에는 속수무책인 업체들이 수두룩했다. 전 세계 기업들이 불황 때 가장 먼저 IT투자부터 줄이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이 모두 큰 어려움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첨단 기술관련 업체 중에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몇몇 기업들에는 오히려 불황이 더 없이 좋은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벤처컨설턴트로 최근 ‘실리콘밸리의 튀는 벤처들’을 펴낸 김민영씨는 “2000년부터 시작된 최악의 IT 불황 속에서도 이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새로운 ‘킬러 앱(애플리케이션)’을 찾아 도전하는 벤처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도 실리콘밸리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안내한 서니베일에 있는 굿 테크놀로지(Good Technology)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식 창업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000년 3월에 설립된 이 회사는 최근 경쟁업체인 캐나다 RIM의 무선통신기기 블랙베리에 자신들의 무선 메시징 소프트웨어 ‘굿링크(GoodLink)’를 얹어놓은 제품<사진>을 개발해 일약 무선 통신 업계에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굿 테크놀로지는 이동하면서도 24시간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자우편을 주고받을 수 있는 데이터 통신 단말기 하나로 최근 북미지역 전자우편 관련 단말기 시장을 독식해온 RIM은 물론 개인정보단말기(PDA) 전문업체인 팜과 핸드스프링까지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데니 쉬레이더(43)는 버클리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후 넷스케이프 등 몇 개의 인터넷 회사를 거쳐 벤처투자회사 클라이너퍼킨스 등에서 파트너(이사)로 활약한 적이 있는 전문 마케터 출신의 경영인이라는 점도 이곳 벤처 업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데니 쉬레이더 사장은 “우리 회사 기술은 단순히 이동 중에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음성과 데이터를 동시에 실어 나르는 이동통신 등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자랑했다.
다방면에 화려한 이력을 쌓은 그의 경영수완은 최근 클라이너퍼킨스와 벤치마크 캐피털 등 벤처캐피털사로부터 무려 6000만달러(약 72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한 데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는 ‘실리콘밸리를 빛낼 스타 벤처경영인 대열에 합류한 것 같다’고 유에스에이투데이지가 평가할 정도다.
이처럼 최근 실리콘밸리에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신기술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하이테크 기업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레드헤링은 분석했다.
이들 중에 새너제이에 있는 카네스타는 최근 각종 기기에 시력을 더해주는 적외선 눈과 반도체 칩, 이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3차원 영상으로 표현해주는 소프트웨어를 내놓았고 또 어바인에 있는 아바마테크놀로지는 최근 데이터를 잘게 쪼개 ‘논리 블록(logical blocks)’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디스크의 크기를 2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최근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다.
신기술 제품이 본격적인 확산단계에 들어가면 바로 매출이 급증한다.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한 분야에 주력하고 있는 스피치웍스는 지난해 매출이 2000년에 비해 49% 증가한 45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미국 전체 음성인식 소프트웨어시장 1억2160만달러 중에 36.4%를 차지하는 실적이다. 이 회사의 CEO 스튜어트 패터슨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제품군을 확보하고 또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모토로라,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등 대형 IT업체들과 제휴를 맺는 등 영업활동을 벌인 것이 불황기에 기대 이상의 성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미국)=서기선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