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남북 통신협상을 마치고

◆구해우 SK텔레콤 동북아협력팀장

 이달초 평양에서 열린 통신분야 남북협상의 남측대표로 참석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정보통신 분야의 남북경제협력사업에 대한 환경조사 차원에서 방북한 이후 세 번째 방북이다. 이번 방북은 정부의 정보통신부 대표단과 SK·KT·삼성·LG·현대 등의 기업체 대표단이 함께 ‘통신분야의 남북협력사업’에 대해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북관계 사업의 특성이 대단히 복잡하고 민감해 우여곡절이 많은데 이번 협상은 통신분야가 사업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고려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 이같은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방북을 성사시킨 것은 정보통신부 변재일 실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인내심 있는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번 방북은 북측이 나진·선봉지구에서 GSM방식으로 이동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는 태국 록슬리사와 평양지역까지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 협상 중이라는 정보를 배경으로 조금은 서두른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베이징에서도 이런저런 실무적인 준비와 협의로 바쁜 일정들을 보내야 했다. 평양행 비행기를 타고서야 이번 방북이 실질적인 협상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정부나 남측 업체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다른 경제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통신분야에서 남북간에 기술표준과 주파수사용 대역을 통일시키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통일 비용을 줄이고, 우리가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CDMA 기술을 기반으로 아시아 CDMA벨트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며, 기업차원에서도 중장기적 전략차원에서 북측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등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번 협상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평양은 지난해와 비교할 때 창광거리 등에 포장마차와 작은 매점이 등장하는 등 조금이나마 더 활기가 있어 보였다. 국제적인 행사로 치러지고 있는 ‘아리랑 축전’ 때문인 듯 싶었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다보니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썼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88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도로정비나 환경개선 등과 함께 시민의식도 성숙됐고, 올해에는 월드컵을 치르면서 시민들의 국제화 마인드도 한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고 있듯이 북한도 ‘아리랑 축전’ 같은 행사를 통해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6·15 이후 남북간 IT분야 협력사업은 다른 어떤분야보다 활성화됐지만 대부분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진행돼왔다. 그런데 IT의 특성을 고려할 때 통신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 남북경협도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번 통신분야의 협력사업은 자체사업으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IT분야의 남북경협을 활성화시키는 데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번 통신분야의 협력사업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SK·KT·삼성·LG·현대 등이 개별기업 차원에서 협상을 추진해오던 것을 정통부가 매개·조정역할을 해 ‘그랜드 컨소시엄’을 주체로 통신분야의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키로 한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협상은 공식접촉 한번, 비공식 접촉 수회를 거치면서 우리측이 제의한 CDMA기술방식과 800㎒ 대역을 기반으로 한 평양·남포지역 이동전화사업과 국제전화 관문국 고도화 사업에 대해 북측 체신성 관계자들이 긍적적·전향적으로 반응해 발전적인 방향에서 추진하기로 기본적인 합의들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이같은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특히 변재일 실장을 비롯한 정보통신부 관계자들의 인내와 꾸준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번 통신분야의 남북협력에 관한 기본적인 합의는 이제 첫 계단을 오른 것에 불과하다. 향후 닥칠 여러 난관은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많고 어려울 수 있다. 각 기업들과 구체적인 주체인 컨소시엄이 해야할 역할, 또 향후 정부의 지속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아무쪼록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전체가 정보화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