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로 전국이 후끈 달아 오른 가운데 며칠 전 국내 유일의 전자 단지인 용산전자상가는 때아닌 ‘한풍’이 불어닥쳤다. 미국계 투자사인 리먼브러더스가 부도로 주인없는 상가로 전락한 선인상가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그동안 조합을 결성하고 선인상가 인수를 추진해 온 임차인들은 “리먼브러더스가 임차인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임차인들은 나아가 리먼브러더스 지사장의 집 앞에서 실력 행사를 벌이는 등 극한 상황까지 치달았다. 결국 이번 사건은 리먼브러더스사가 한 발 물러서면서 일단락됐다.
사태가 진정되면서 임차인과 선인상가에 입주해 있는 임대인들은 한숨을 돌리고 있다. 자칫 리먼브러더스사가 선인상가를 인수했을 경우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법원의 부동산 경매를 통해 상가를 낙찰받고 잔금만 납부하면 되는 상황에서 외국인 회사에 이를 빼앗길 수 있었다. 임대인 역시 임대료 문제로 적잖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아무튼 사태가 원점으로 돌아오면서 이제 공은 선인상가의 원주인인 임차인과 임대인 앞으로 넘어갔다. 사실 선인상가 임차인과 임대인은 오래전부터 임대료 문제로 줄다리기를 벌여 왔다. 전자상가가 이전의 명성을 잃어 가고 전자 제품 수요가 주춤하면서 임대인은 임대료를 낮춰줄 것을 요구한 데 반해 임차인은 부채 탕감을 들어 임대료 인상을 고수해 왔다.
용산전자상가는 누가 뭐래도 가장 역사가 깊은 전문 집단상가다. 아직도 전자제품 하면 용산이 떠오를 정도로 브랜드 가치가 대단히 높다. 선인상가 임차인이나 매장 주인뿐 아니라 모든 용산 입주업체는 이번 사태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는 흔한 넋두리로 지금의 용산 상가에 안주한다면 제2, 3의 리먼브러더스는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다. 용산 전자인 모두가 자기의 이익보다는 상가 부흥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용산의 명성은 계속될 것이다.
<정보가전부·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