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4월 통신업계의 공정경쟁 환경 조성을 위해 시내망인 ‘가입자선로 공동활용제(LLU)’를 마련, 고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신사업자간 실무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입자선로 공동활용제는 시내전화 사업자인 KT의 시내망(가입자선로:동선)을 활용해 타 기간통신사업자가 시내전화 또는 초고속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정부가 당초 통신업계 비대칭규제의 주요 수단 중 하나로 내세울 만큼 주목받고 있다. 특히 SK텔레콤은 KT지분 11.34%의 매입 근거로 시내망의 중립성을 거론할 정도로 통신업계 공정경쟁 환경조성의 키워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고시한 이후 두 달이 다 돼가고 있는 지금까지 LLU에 관한 통신사업자간 실무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기간통신사업자의 한 관계자는 “KT는 지난 4월 20일 정부가 LLU를 고시한 이후 협상에서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정부가 고시한 사항을 민영화된 KT가 과연 준수할지 의심스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업자의 한 관계자도 “향후 유무선을 통합한 차세대통신에서는 시내망 중립성 여부가 통신시장의 향배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고 중요성을 강조한 뒤 “정부가 LLU를 내놓은 것도 사실은 시내망 공동활용은 물론 시내망의 중립성을 확보해 불공정 행위를 억제하고 더 나아가 중복투자를 방지하는 등 궁극적으로 후발사업자의 경쟁력을 제고하자는 취지인데 아직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후발사업자들은 시내망의 공동활용 수준을 넘어 아예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동전화·무선랜·시외전화·국제전화·초고속인터넷서비스 등 모든 서비스가 시내망을 타고 들어오는 만큼 시내망 사업자가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각종 비즈니스를 전개하면 경쟁 자체가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들 사업자는 이 같은 예로 KT의 초고속인터넷서비스 부문 성장과 KTF의 급성장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시내망사업자이자 기득권자이기도 KT의 한 관계자는 “현재 논의하고 있으나 여러가지 협의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늦어지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LLU 시행을 위해 사업자간 협의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전했다. KT측은 지난달에도 “고시 이후 두 달 이내에만 시행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협의를 진행중이니 기다려 달라”며 이달중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하나로통신의 관계자는 “그동안 KT는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다가 지난주에야 겨우 접촉을 하게 됐는데 아무런 결과는 없었다”며 “KT측의 태도로 보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질지 현재로서는 회의감이 더 든다”고 KT측의 무성의를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점을 들어 일단 민영화를 사실상 완료한 기득권자이기도 한 KT가 ‘딴 맘’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특히 KT는 경영권 위협 가능성을 들어 SK텔레콤측에 보유중인 KT 주식을 매각하라고 하면서도 SK텔레콤이 지분 매입의 요인으로 제시한 가입자망 중립성 요구에 인색한 것에 비춰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행위가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정보통신부의 관계자는 “정당한 사유없이 고시한 사항이 지켜지지 않으면 시정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다”며 “KT가 아무리 민영화가 됐다고는 하나 법규 준수 차원에서 고시사항을 지키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시내망의 공동활용 수준을 뛰어넘는 중립화를 제도적으로 이끌어내는 방안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용어>LLU란?
가입자선로 공동활용제(LLU)는 후발사업자인 기간통신사업자나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가 시내전화사업자인 KT의 가입자선로(동선)을 이용해 시내·시외·국제전화·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유효경쟁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제공방식으로는 동선제공방식과 고주파수제공방식 등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후발사업자들은 이동전화·무선랜·시외전화·국제전화·초고속인터넷서비스 등 모든 서비스가 시내망을 타고 들어오는 만큼 시내망 사업자가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불공정 행위를 남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