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봄이 오냐고요? 오지요, 확실히 옵니다.” 새너제이에 있는 한국 벤처 관련 최대 민간기구로 100여개 기업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킨(KIN:Korean IT Network)의 김우경 회장은 밸리의 봄에 대해 단호히 ‘예스’였다.
소프트웨어진흥원이 한국 벤처기업의 미국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새너제이에 설립한 아이파크(iPARK)의 박영준 부소장도 “두고 보십시오. 제가 있는 동안 큰 것 한두 건은 터뜨릴 겁니다”며 한국 벤처기업의 미국시장 대박을 호언장담했다. 또 다른 현지 컨설턴트는 “닷컴 거품이 꺼진 지금이야말로 사무실 임대비 등이 낮아 비즈니스하기 딱 좋습니다”고 밝혀 세계IT 시장의 젖줄이 말라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이곳을 찾은 기자를 당혹케 했다. 하지만 며칠간 이곳을 둘러 본 후에야 기자는 ‘밸리(실리콘밸리)의 봄이 언제 오는가’하고 묻는 것이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적으로 실리콘밸리 하면 모든 신기술의 원천지인 것처럼 생각한다. 물론 이곳은 트랜지스터·마이크로프로세서·자기디스크장치 등 컴퓨터 산업을 이끌어온 각종 신기술의 산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신기술의 메카’보다는 ‘기업을 키워내는 우수한 환경’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스탠퍼드대 기본스 교수는 이 환경을 ‘기업생태계’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는 창업에 유리한 법규, 재능과 능력이 우선시 되는 풍토, 실패 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실패 용인 문화, 벤처투자가·헤드헌터·회계사·컨설턴트 등 창업을 돕는 전문화된 비즈니스 인프라 등이 갖춰져 있다는 말이다. 밸리는 바로 이런 생태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다른 지역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벤처들의 꿈의 장소라고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반도체 산업이 한창 발전하던 지난 70년대 돈 호플러라는 기자가 명명했다는 실리콘밸리. 새너제이 공항을 뒤로 하면서 쿠바의 한 레스토랑이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구상한 장소임을 기리기 위해 내걸었다는 푯말 ‘일상이 전설이 됐다(Ordanary thing became a legend)’를 떠올리며 치열히 사는 이곳 한국 벤처들에게도 하루 빨리 ‘전설’이 되는 날이 오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했다.
<실리콘밸리=국제부·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