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디지털경제 시대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들 한다. 아날로그 시대의 관행을 반복하다보면 기업 경쟁력이 급작스럽게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기업이 ‘투명성’을 내세우며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B2B의 도입은 이런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자구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두가지 사례를 보면 아직도 기업들이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같아 안타깝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6개 제지업체에 무더기로 담합행위에 대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한솔제지·신무림제지·신호제지·한국제지·계성제지·홍원제지 등 제지업계를 대표하는 이들 기업이 공동으로 제지가격을 인상했다는 혐의다. 지난해부터 줄곧 업계 안팎에서 B2B거래 활성화의 저해요인 중 하나가 된 게 바로 공급업체간의 잘못된 관행이다. 독점·담합 등에 익숙해진 일부 기업이 뒷거래로 시장을 좌지우지하면서 투명성이 요구되는 B2B거래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 그 요지다.
당장 눈앞의 것이 급하다면야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시장구도가 유지될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견 건설기업인 S사의 경우는 더욱 황당하다. S사는 최근 홈페이지 전면 개편을 위해 8개 업체를 대상으로 제안설명회를 개최했다. S사의 전산담당자는 심사숙고 끝에 자사 시스템을 가장 잘 이해하는 업체를 선정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며칠 후 “선정업체를 바꿔볼 의향이 없느냐’며 경영진으로부터 보고서를 되돌려 받았다. 경영진이 지목한 A사는 선정과정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곳이었다. 경영진이 A사를 꼽은 이유는 단순하다. S사가 올해초 투자한 곳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제안설명회를 열지 않고 내부적으로 추진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놀라운 것은 경영진이 지목한 A사의 주력업무는 홈페이지 구축이 아니란 점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본다면 S사는 B2B 핵심 인프라인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구축할 때도 능력이 안되는 A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뜯어 고쳐야 할 관행이 아직도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