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내가 산 책(e북)을 읽고 싶은데 사람들은 내 책도 마음대로 읽을 수 없다고 하네. 내 책에 DMCA이라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는 거야.”
최근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월드컵을 시청하는 대신 미국 스탠퍼드대학 구내에서 ‘밀레니엄저작권법(DMCA)’을 폐지하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에 나선 프로그래머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C넷 기사다.
미국이 지난 98년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한 이 법률은 우리에게도 ‘DMCA’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주요 외신은 DMCA에 대한 기사를 자주 다뤄왔다.
이번 DMCA 반대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에드워드 펠튼 교수와 그를 추종하는 40여명의 제자. 컴퓨터밖에 모를 것 같은 순진한 프로그래머들을 거리의 투사로 만든 것이 뜻밖에도 DMCA라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또 DMCA가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제정됐고 그 혜택을 누리는 곳도 미국 저작권자(회사)들일 수밖에 없는데도 미국 프로그래머들이 그처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최근 미국 소프트웨어 및 영화제작자협회 등을 앞세워 전세계 뒷골목까지 뒤져 불법복제 소프트웨어와 CD·DVD업체들을 처벌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이 법률 때문에 가능해진 것 아닌가.
또 그동안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중국과 구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란의 한 웹사이트도 최근 미국 영화를 인터넷으로 배포하다가 철퇴를 맞았을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DMCA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의문이 생기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렇다면 미국 프로그래머들은 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DMCA)을 이처럼 성토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야말로 지적재산(소스코드)을 만들어내는 당사자들이라는 점에서 궁금증이 더해갔다.
이에 대한 에드워드 펠튼 교수가 내놓은 대답은 다분히 철학적이었다.
“DMCA의 시행으로 학문의 자유, 그 결과를 표현하는 자유를 빼앗아갔다”는 것.
프로그램 개발에 필수적인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을 금지시킨 것이나 이런 주제에 대한 연구와 그 결과물을 발표하는 것까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DMCA는 “저작권을 보호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에드워드 펠튼 교수는 “더이상 기술개발의 ABC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 책상머리에서 DMCA와 같은 법을 제정하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다”며 제자들과 함께 프로그램 책 대신 법률 책을 들고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법과정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전공까지 바꿔 법률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미국 프로그래머들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미국의 숨은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국제부 서기선 차장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