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느 벤처기업 사장의 비애

 무모한 듯 보였으나 이유 있는 도전에 나섰던 한 벤처기업 사장인 J씨(41)의 꿈이 최근 무너졌다. 믿는 도끼(회계관리 임원)에 발등을 찍혀 회사를 떠난 것이다.

 J씨는 한국전자통신원구원(ERTI) 연구원으로서 미국 퀄컴사로부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이동통신 기술이전 실무를 맡았고, 대기업 통신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CDMA 상용화를 경험한 재원이다. 이같은 배경은 통신장비 대기업조차 진땀을 흘리는 차세대이동통신(IMT2000)용 기지국 개발에 도전장을 내미는 자신감으로 연결됐다.

 지난 98년 출범한 그의 회사는 대부분의 통신장비분야 벤처기업들이 모듈단위 부품이나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과 달리 유무선 통신시스템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생산해 업계의 시선을 모았다. 99년 말부터는 땀의 결실이 가시화되기 시작해 국내 IMT2000사업자의 비동기방식 시스템 공동개발업체로 선정돼 성공신화에 한발짝 다가섰다.

 실제 J씨의 회사가 개발한 장비는 국내 대형 통신장비기업으로부터 핵심기술 제공에 대한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회사의 미래가치가 높게 평가돼 IT경기 장기침체의 와중에서도 안정적인 투자유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J씨의 비애는 회사의 미래가 밝아진 시점부터 시작됐다. 연구원 출신으로서 늘어난 투자유치자금에 대한 회계관리를 혼자 해결할 수 없어 외부인사를 영입한 것이 잘못 꿴 단추였다.

 J씨는 “그(회계관리 임원)를 너무 믿었던 게 실수였다”고 말한다. 회계관리 임원이 요청한 ‘기업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자금(?)에 대한 결재’가 약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회계관리 임원은 J씨의 약점을 은근한 협박으로 연결함과 동시에 회사 정관상에 명시된 ‘임원진 50% 이상의 동의에 따른 경영진 교체조항’을 이용, 임원진에 대한 물밑작업 끝에 J씨를 회사 밖으로 밀어냈다. J씨의 기술지향적, 안정적인 회사운영 방침이 매출증대, 주식배분과 같은 눈앞의 성과물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물론 J씨의 안정지향적인 경영방침이 성공을 위한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경영진은 성급한 결실을 추구하기보다는 실력과 기술을 배양하는 게 선결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엔터프라이즈부·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