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호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본부장
국가간 역학관계를 냉철하게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는 기술제국주의시대에 살며 기술전쟁을 치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무력을 가진 국가가 약소국을 침략·지배함으로써 자국의 융성을 도모하는 소위 ‘땅따먹기식’ 제국주의시대였다면 지금은 무력이 아닌 국경없는 경제력과 기술을 무기로 하는 ‘기술제국주의시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기술개발과 사업화에 노력하지 않는 기업과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안타깝게도 경제력이 열세인 나라는 자국의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보다 기술 식민사고에 젖거나 이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부족할 때 자본이 풍부하고 자국 기술개발과 수용에 민첩한 선진국에 지배당하는 침략적 기술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즉 우리 하기에 따라 기술제국주의 대열의 선두에 진입할 수도, 그 대열에서 낙오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기반으로 산업기술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단순한 가치 부여보다 역사적 관점에서 이를 재인식해야 한다.
아직도 국내 우수기술이 국내 기업에 냉대받거나 선진국에 선점·매수돼 해외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핵심기술을 역수입에 의존하는 풍토, 자국 기술에 대한 냉소주의, 기술 식민적 사고방식 때문에 국산 유망기술이나 제품을 폄하하고 해외 연구소 시험 결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풍토가 존재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우수 기술인력이 해외로 이탈하고 이공대학 진학 기피현상이 심화하는 등 기술 입국 취지가 퇴색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분야에 종사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기술개발·제품화·사업화와 관련된 현행 제도 및 법령과 그 운영이 급변하는 기술전쟁시대에 적합한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특허제도와 관련, 그 심사기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세론이 높다. 자금력이 풍부한 기업은 몰라도 중소기업은 특허 승인 전에 고사할 가능성이 높다. 관계 당국과 기관은 그 원인을 찾아 선진국수준으로 심사기간을 단축해 나가야 한다.
둘째,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출시할 때 정부로부터 관련 법규에 의거한 승인 혹은 허가를 받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문제는 관련 규제 법령이 법 제정 당시 기술이나 제품을 전제로 하고 있어 신제품 및 신기술이 과거의 기술 수준·방법으로 규제·허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정해진 제도나 규칙이 ‘성역화’되면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에는 철옹성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셋째, 관계 당국과 법령의 판단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관련 법의 입법 취지와 목적을 살리고 신기술이나 제품의 사업화, 시장 진입이 터무니없이 방해받는 일이 없도록 신제품·신기술 인허가 시 민간 전문기관·연구소로부터 평가받는 제도를 도입,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적용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술은 깊고 다양하며 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 지식의 산물이기 때문에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기술개발의 근간은 소위 첨단 벤처성 기업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을 위해 금융자금 공급정책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다른 지원 방향도 모색해야 한다. 마케팅 네트워크 확충 차원에서 신기술 및 제품이 모이는 대형 온오프라인 시장을 구축하고, 마케팅 인력확보 차원에서 개별 기업과 은퇴한 경험 많은 국내외 기술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서포트 엔젤시장’ 형성은 실질적인 지원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