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각) 발생한 미국의 통신서비스 업체 월드컴의 회계부정 여파가 미국 통신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블룸버그·로이터 등 외신은 38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업계 사상 최대의 기업회계 부정으로 미국 사회 전반이 충격에 휩싸였으며 특히 최근 수년간에 걸친 침체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통신서비스 시장에 인수·합병(M&A)과 같은 합종연횡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태의 진행=월드컴측은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5분기 동안 38억달러의 경상 지출을 자본 투자로 기재해 현금 흐름과 순익을 부풀려 왔다고 밝혔다. 이 사실을 발견한 월드컴 이사회는 회계 조작을 주도해온 스콧 설리번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해고하고 지난 5분기 재무제표를 다시 계산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여파는 미국 증권가·금융부문·통신부문으로 퍼졌다.
◇미 정부 반응=월드컴의 회계부정에 대해 미 정부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파장이 심화되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주주나 임직원을 불문하고 책임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철저한 조사를 단행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 톰 대슐 의원은 “기업의 회계부정을 감독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기 위한 입법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6일 사기혐의로 월드컴을 뉴욕연방법원에 고소했으며 법무부(DOJ)가 이 사안을 형사사건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통신장비 업계 반응=월드컴 사태는 통신장비 업계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섰다. 월드컴에 장비를 공급해온 루슨트테크놀로지스와 노텔네트웍스·주니퍼네트웍스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3사 관계자들은 “여파가 크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26일 이들의 주가는 루슨트가 20%, 주니퍼가 18%, 노텔이 9%나 빠졌다.
특히 월드컴에 매출의 10%를 의존하고 있는 주니퍼의 경우 타격이 적잖은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더욱이 장비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기세가 최근 들어 한풀 꺾인 상태여서 월드컴 사태가 설상가상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대변인은 “월드컴 사태가 우리의 성공에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시장 최대 업체 시스코시스템스는 월드컴과 거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서비스 업계 반응=월드컴의 패착은 경쟁업체 AT&T와 스프린트에 유리할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장거리 및 인터넷 서비스 고객들이 옮겨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실제 유유넷과 인터넷 시장에서 경쟁중인 케이블앤드와이어리스(C&W)는 기업고객들을 대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 대부분은 업계의 신뢰성 하락과 곧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특히 월드컴에 회선을 빌려줘온 벨사우스·SBC커뮤니케이션스 등 지역벨사들은 적잖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지역벨사는 월드컴에 회선을 임대, 매출의 4%를 월드컴으로부터 올려왔다.
미국 업계에서는 버라이존커뮤니케이션스나 SBC커뮤니케이션스가 월드컴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버라이존이나 SBC가 월드컴을 인수한다면 장거리시장 최대 업체 AT&T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지난 99년 월드컴과 64억달러에 달하는 아웃소싱 서비스 계약을 맺은 EDS도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월드컴의 앞날=급한 불을 끄기 위해 월드컴은 우선 설리번을 해고했고 부사장 겸 회계책임자인 데이비스 마이어스가 자진 사임했다. 연간 9억달러의 인건비 절감을 목표로 오는 28일부터 1만7000명을 감원키로 했다. 이를 통해 연간 20억달러의 비용절감효과를 거두겠다는 복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업계에서는 월드컴이 파산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월드컴은 통신수요가 급증한 지난 1990년대에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총 300억달러를 빌렸으나 최근 수년간 경기침체 속에 수요가 급감하면서 부채상환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따라서 월드컴이 이번 사태로 파산할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경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업이 무너지는 셈이 된다.
◇월드컴은 어떤 회사인가=지난 83년 머레이 월드론과 윌리엄 렉터가 LDDS라는 할인 장거리통신서비스를 구상하면서 태동했다. 85년 투자가 버나드 에버스가 LDDS의 CEO로 취임했다. 89년부터 96년사이에 다른 회사를 잇따라 인수·합병했고 특히 98년에는 장거리업계 2위 업체인 MCI를 합병해 화제가 됐다. 이후 월드컴은 MCI가 소유한 인터넷 서비스 업체 유유넷까지 합쳐 지역·장거리전화에서부터 인터넷에 이르는 패키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월드컴은 활발한 사업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년간 통신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올 3월에는 미 SEC로부터 회계절차와 에버스를 비롯한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회사 임의대출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4월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장기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이어 에버스 CEO가 임의 대출문제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부회장인 존 시지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