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모 식당에서 상의를 의자에 걸어 놓은 채 식사를 하다가 지갑을 도난당했다.
무척 당황스럽긴 했으나 그래도 지갑 속에 들어있던 신용카드나 현금카드 분실신고부터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평소에 거래은행이나 카드사들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거나 메모를 해 갖고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114 안내를 통해 전화번호를 확인한 후 다이얼을 돌렸더니, 한결같이 나를 맞이하는 것은 자동응답시스템(ARS)에서 흘러나오는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한참동안 계속되는 서비스 요청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분실신고 코드를 누르자, “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통화중이오니 잠시후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고 들려오는 기계적인 응답은 정말 나를 짜증나게 했다. 가능한한 빨리 신고를 해서 카드의 부정사용을 방지해야 할텐데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또 친지들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급받은 카드가 한 두 장이 아니라 카드사마다 신고하려면 상당 시간 전화기와 입씨름을 해야 하는 이런 고객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은 채 한가로운 대답만 되풀이하는 기계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은행이나 카드사의 입장에서 보면 서비스 시간의 연장과 동시에 비용절감이라는 측면에서ARS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모처럼 이런 시스템을 한번 이용해 본 사람으로서는 무척 불편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번 기회에 모든 카드를 정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ARS 설계 담당자들은 시스템을 설치한 후 한번이라도 실제 이용해 본 적이 있는지, 이용해 보았지만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적어도 한번이라도 이용해 보았다면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입장을 고려한 시스템이라면 각종 사고신고 서비스부터 안내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처리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지 않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신고를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런 사정은 인터넷뱅킹 서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모든 은행이 빠른 잔액조회나 기타 조회 서비스는 제공하고 있지만 빠른 사고신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상담원에 의한 직접 상담을 ARS로 전환해야 하고 텔레뱅킹이나 인터넷뱅킹 등 셀프 서비스뱅킹으로 유도해야 할 사정이라면 처리의 완급이나 발생빈도 등을 감안한 우선처리방식으로 쉬운 이용과 빠른 처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을 해 주었으면 한다.
임태언 인터넷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