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한달간의 월드컵 대축제가 끝났다. 이번 월드컵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의 물결이었다.
한달 내내 전국을 달아오르게 한 붉은 색은 섬뜩한 빨간 색이 아니라 아흔 넘은 할머니의 추억 속에 간직된 곱디 고운 신부의 얼굴에 찍힌 연지곤지 그 고운 색깔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고운 색깔을 되찾았으며, 묘하게도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것을 되찾아 어른들에게 돌려주었다.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안에 있던 무한한 능력이다. 선조들이 하늘같이 높은 말을 타고 달리던 드넓은 동북아 평원에서 키워낸 끈끈한 붉은 피가 우리 속에 있었으며 이번에 유감없이 분출된 것이다. 6월의 축제기간에 우리는 그 선조들이 호령하던 넓디 넓은 평원을 다시 찾았다. 우리는 이 넓은 영토를 잃어서는 안된다.
무엇이 이들에게 이 넓은 대지를 가져다 주었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인터넷으로 만들어진 사이버세계와 사이버영토다. 어른들은 갸우뚱했다. 안정환과 태극전사들의 오노식 골세리모니를 보고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나 붉은 악마,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미 사이버 대∼한민국에서 약속한 언어였다. 사이버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서 누가 만들어 올려놨는지 모르는 그 플래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던 것이다. 붉은 악마는 좁은 한반도 땅을 탓하지 않고 새로운 대지를 찾았으며 그곳으로 세계인을 불러모았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붉은 악마에게 사이버 대∼한민국을 물려줘야 한다. 아니 그들이 세워나가는 사이버 대∼한민국에 한 삽이라도 더 힘을 보태야 한다. 현실적 대안은 우리 모든 젊은이가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사이버 대∼한민국 영토에 집을 짓도록 해야 한다. 그 안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세계인과 대화하게 해야 한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pe.kr’ 도메인을 ‘reds.kr’로 바꿔 모든 젊은이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국가가 나서서 이들의 홈페이지를 무료호스팅해줘야 할 것이다. 보다 쉬운 웹에디터를 개발해 보급하고 무엇보다 통신망 인프라를 확대해 인터넷 체증을 줄여야 한다. 유무선인터넷 이용료이나 휴대폰 통신료도 현재보다 최소한 절반 이하로 낮춰야 한다.
그동안 우리 어른들은 붉은 악마의 고운 열정을 장삿속으로만 이용해온 점을 반성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 기간에 우리는 IT강국으로서 자랑스러워만 했지 그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힘은 먼저 교육에서 왔으며, 다음은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우리의 젊은 학생들이 만들어준 국내 IT시장에서 왔다. 젊고 붉은 악마는 앞장서서 삐삐를 사고, 휴대폰을 바꾸고,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밤새 채팅을 하고, 플래시를 만들어 올렸다. 어른들이 한 일은 안타깝게도 그런 젊은이들이 공부도 않고 머리염색이나 한 채 컴퓨터와 휴대폰에 중독돼 있는 생각없는 것들이라고 하면서도 연신 그들에게 비싼 통신요금을 물리고 매번 신제품을 개발하고 어마어마한 광고비를 들여 소비심리를 자극해 돈벌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같이해야 할 때며, 젊은이들에게 진 빚을 돌려줘야 할 때다.
세계는 이번에 정말 놀랐다. 2002 월드컵을 진정한 축제로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붉은 악마에게 놀랐다. 이제야 그들은 왜 대한민국이 할리우드 영화와 빌보드차트,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밀려난 유일한 나라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는 어른들이 마음의 문을 열 차례다. 젊고 곱기만 한 붉은 악마에게 훤한 길을 열어주고 사이버 대∼한민국이 세계의 주인이 될 날을 기다려야 한다.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서 그랬듯이, 전국 방방곡곡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어디서나 그랬듯이 모두가 붉은 악마가 돼 고운 열정을 영원히 잊지 말고 피워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