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IT기업들’
컴퓨터·통신·인터넷·반도체 등 전분야를 막론하고 세계적 IT업체들의 올 상반기 사기는 어느때보다도 낮았다. 기업들의 전산투자가 살아나지 않아 컴퓨터업체들이 고전했으며 복지부동한 세계경기 때문에 휴대폰 업체들도 어깨를 내린 채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인터넷업체들도 e베이 등 선두업체를 제외하고는 부진을 면치 못해 2, 3등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비정한 시장의 원리를 다시 한번 체험한 시기였다. 올 한해를 시작할 때만해도 작년의 침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회복의 달콤한 맛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술업체들은 막상 뚜껑이 열리고 혼신의 경주를 했지만 끄떡않는 경기 때문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에 ‘AOL 미 기업 사상 최대 적자’라는 끔찍한(?) 제목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며 이어 ‘NEC 창사 이래 최대 적자’ ‘야후 6분기 연속 적자’ 등의 쓰라린 소식들이 이어졌다. 우울한 소식은 상반기가 끝나가는 최근까지도 이어져 세계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을 비롯해 AMD·애플컴퓨터 등이 매출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같은 신용평가회사들은 IT업체들의 신용등급까지 강등해 가뜩이나 움츠려든 업체들을 더욱 코너로 몰았다. 지난달 15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모토로라의 신용등급을 트리플B+에서 트리플B-로 투기등급 바로 두단계 위로까지 낮추었으며 무디스도 미국 이동통신업계의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업체들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하향했다. 하지만 불황속에서도 빛나는 업체는 꼭 있는데 일부 업체는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표에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세계 2위 개인용컴퓨터(PC)업체인 델컴퓨터와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시스코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웃돌아 주가가 큰 폭으로 뛰는 보너스까지 얻기도 했다.
컴퓨터업체 중에서는 최대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런대로 괜찮은 열매를 거뒀는데 매월 6월말 일년 실적을 결산하는 이 회사는 지난 3분기(1∼3월)에 전년 동기보다 12% 늘어난 27억달러 상당의 순익을 기록했다. 매출도 일년전 같은 기간보다 13.2% 늘어난 72억5000만달러를 보였다. 반면 세계 최대 컴퓨터업체인 ‘빅블루’ IBM은 보기 드물게 분기 순익 저조 경고와 함께 1∼3월 1분기 이익도 크게 하락하는 참패를 맛봐야 했다. 그리고 10월말 일년을 결산하는 HP의 경우 지난 2분기(2∼4월) 매출은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당초 월가의 전망을 웃도는 성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리눅스 업체들의 선전 여부도 큰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최대 리눅스업체인 레드햇은 5월말 마감한 1분기 결산에서 적자액이 전년동기 2760만달러(주당 15센트)보다 크게 줄어든 430만달러(주당 3센트)를 차지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1회성 비용을 제외한 경상적자액의 경우 더 적은 82만9000만달러, 주당 적자는 제로 상태라고 설명했다. 특별히 통신업체들은 경기둔화 지속과 수요 회복 지연으로 너나 할 것없이 모두가 총체적 불황에 신음했다.
독일 최대 전화회사인 도이치텔레콤(DT)이 1분기(1∼3월)중 대규모 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루슨트, 노키아, AT&T 등 굴지의 통신업체들이 우울한 성적에 얼굴을 찡그려야 했다. 하지만 퀄컴의 경우 지난 2분기(1∼3월)에 4390만달러의 이익을 낸 데 이어 3분기(4∼6월)에도 주당 21∼23센트 이익이 예상된다고 자체 예상, 타업체들의 부러움을 샀다. 반도체업체들도 매출과 이익 감소로 쓴 웃음을 지었는데 인텔의 1분기 순익은 예년보다 적은 10억달러에 그쳤다. 이외에도 세계적 온라인 서적업체 아마존이 3월말 마감한 1분기 실적에서 2300만달러,주당 6센트의 순손실을 보였으며 야후도 1분기(1∼3월)에 1억9270만달러의 매출에 5360만달러 적자를, 그리고 AOL타임워너도 1분기(1∼3월)에 회계규정 변경에 따른 대규모의 대손상각처리로 미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542억4000만달러의 순손실을 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