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주 카이스트테크노경영대학원장 < sjpark@kgsm.kaist.ac.kr>
전 세계 60억 인구를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4700만 국민을 엑스터시에 빠지게 했던 월드컵이 끝났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과를 올리고 단군이래 가장 큰 국민적 기쁨을 선사한 이번 월드컵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임에 틀림없다.
이제 차분히 현실로 돌아가자는 얘기와 함께 이번 월드컵으로 이뤄낸 성과를 국운 상승의 기회로 연결하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강력한 인상과 IT 강국 홍보 성공으로 인한 대한민국 브랜드의 상승이 우리 기업들에 엄청난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칫 흥분에 빠져 본질을 놓칠 경우 개국이래 가장 큰 호기를 물거품으로 만들수 있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보듯이 월드컵 4강이 경제 4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히딩크식 경영이 화제가 되고 있으나 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바꾸어야 한다고 외쳐왔으나 잘 안되고 있던 것이다. 연고주의 타파, 가치공유, 기본강조, 혁신추구, 전문지식 활용, 개방을 통한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 등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 히딩크 감독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말로 외치기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큰 교훈은 실력의 중요성에 대한 일깨움이다. 만약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이 16강에 못 오르고 1승조차도 거두지 못했다면 우리 국민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폴란드와의 첫 게임에서 이미 전과 확연히 달라진 우리 팀의 실력을 보고 결과와 상관없이 칭찬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까. 기본 실력을 착실히 쌓으면 결과적으로 성과가 나온다. 혹 이번에 성과가 나오지 못하더라도 실력이 있으면 언젠가는 성과가 나오게 돼있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그 동안 우리는 실력보다는 성과, 특히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봐야할 시점이다. 국가 경제나 기업 경영에서도 성과보다는 실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본질적인 실력이 보람으로 느껴지도록 해야 하며 과학기술과 같이 경제의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에 다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번 월드컵의 교훈은 우리나라 IT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개막식 및 첨단기술 체험을 통해 IT 강국의 이미지를 심은 것은 큰 수확이나 근본적으로는 이동전화, LCD 모니터, 반도체, PC, 광대역 통신 인프라 장비 등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콘텐츠, 통합 솔루션 등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산업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IT 수출 약 400억달러 중 소프트웨어 수출은 2억달러에도 못미치는 상태다. 인도는 지나해에 70억달러를 넘었고 2008년에는 770억달러를 달성할 것이라고 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은 아직도 겉치레에 비해 실속은 보잘 것 없다. 다행히 이번 월드컵에서 아시아의 자존심으로서의 코리아 브랜드 이미지는 일본·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정보화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출할 호기다. 특히 미국·유럽 등 선진국들의 IT 인력이 자체적으로도 모자라는 때에 우리나라의 고급인력을 제대로 훈련시키고 전자정부 등 대형 프로젝트의 경험을 잘 활용하면 미개척된 많은 대형 소프트웨어 시장을 우리 시장으로 만들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선진국의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우리나라 기업의 IT화 수준도 투자에 비해 기업의 전략과 잘 연계되지 못하고 있으며 기술 위주의 프로젝트로 가치를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실속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되새겨 IT 산업도 내용과 실속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이번에 우리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보았다. 그리고 그 리더십의 핵심에는 겸손과 정직성이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이겨도 우쭐대지 않고 져도 좌절하지 않는 자기절제와 선수들을 대할 때의 진실함과 자신감의 바탕이 된 정직성은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이번 월드컵의 진정한 승자는 우리 국민 모두다. 자발적인 힘이 결집돼 하나됨을 보이고 세계를 경악케 할 정도의 질서의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숙한 국민성과 자부심은 우리의 큰 재산이다. 자부심은 자칫 자만심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계하며 말보다는 실천으로 어렵게 획득한 재산을 지속성있게 지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향후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