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입찰제도 고치자

 ◆황유천 후지제록스페이저프린팅코리아 사장

유례 없이 성공적으로 치른 환희와 감격 속의 월드컵 열기는 앞으로도 상당부분 지속될 것 같다. 둥근 공 하나와 획일화된 규칙 아래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 11명의 선수가 한나라를 대표하는 그 순간 국력의 차이나 정치상황 그 무엇도 무력해지고 오직 90분 동안 선수들이 뿜어내는 기량과 실력만으로 공정하게 승부가 가려졌다. 물론 여기에는 양팀 모두에게 공정한 룰이 적용되고 심판의 편파판정이 없다는 전제가 있다. 허나 우리사회에는 아직까지 양팀간 다른 룰이 적용되며 결정적으로 심판의 편파판정이 과감하게 공정경쟁을 죽여버리곤 한다.

 정보기술(IT)산업 전반에 있어 총성 없는 전쟁을 꼽는다면 아마 입찰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업의 한해 매출을 좌우할 만한 대형 계약 성립에 있어 흔히 사용되는 공개입찰 방식은 언뜻 보면 공정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공급자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벌어지는 출혈적인 저가입찰 및 사전담합으로 흘러가는 양상을 읽을 수 있다. 많은 경우 가격이라는 하나의 기준이 구매결정에 있어 우선순위를 차지하면서 저가입찰경쟁이라는 구매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불합리한 악영향을 가져올 악수를 두고 있다. 

 ‘우선 따내고 보자’는 수주경쟁은 기업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네트워크통합(NI)업계, 시스템통합(SI)업계, 웹에이전시업계를 막론하고 IT산업 전반에서 원가에도 이르지 못하는 수주금액을 떠안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주가 늘수록 손해의 정도를 감당하지 못해 차후의 공급물량을 포기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사후 유지보수 서비스 부실로 이어지며 프린터업계의 경우 공급자가 입찰시 손해를 보았던 저가비용을 은근슬쩍 소모품의 금액에 합산, 구매기업에 불만을 넘어선 불신감까지 부르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저가구매로 일견 유리해 보이는 구매자에게도 불합리하다. 기업들이 더욱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단지 최저 기준선을 통과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빈발한다. 단기적으로는 구매비용을 줄이는 효율성을 낳지만 결국 업무의 생산성 측면에서 비싼 구매를 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최악의 병폐로 꼽히는 것은 ‘공정경쟁’이라는 입찰의 원칙이 무시되는 ‘사전담합’의 사례다. 이미 사전 로비로 인해 사업자가 결정된 상황에서 ‘입찰’ 방식을 내세워 다른 사업자들을 참여시키는 상황이 묵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비생산적인 저가경쟁과 사전담합의 악순환은, 그 손실이 공급자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결국에는 관련산업 자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오며 그 피해는 품질보장 미비, 장기적 총소요비용 증가 등으로 결국 구매자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

 공정입찰을 위해서는 우선 공급기업이 ‘가격’만을 중시하는 입찰풍토를 지양해야 한다. 입찰시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 향후 유지보수 서비스, 기술 지원계획 등을 가격과 더불어 비중 있게 고려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장비 가격 만큼이나 유지비용이 중시되는 프린터업계의 경우 소모품이나 장당 출력비용 및 함께 제공되는 솔루션의 효율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처럼 재무·조달부서 등 구매 관련 부서만이 선정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앞서의 전문적 요소들을 고루 점검하기는 힘들다. 장비나 서비스를 직접 사용할 부서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가격은 물론 장비나 서비스에 대한 구매과정을 공정하게 만들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공급업체들의 자성노력도 필요하다. 업체 스스로가 입찰관행의 문제점을 인식, 제살깎기식 경쟁을 지양하면서 더 이상 출혈경쟁을 통해 산업 자체의 성장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후에야 안정된 시장을 기반으로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할 기술에 투자할 여력이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결정이 이뤄지고 실력있는 기업에게 승리가 주어지는 투명한 입찰이야말로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진정 올바른 선택권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