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이 ‘4번째 프로세서 도박’에 나섰다. 작년에 PC용 프로세서 시장의 78.7%를 점유, 265억달러 매출에 34억달러의 순익을 올린 인텔은 8일(미국시각) 하이엔드 서버와 워크스테이션 시장을 겨냥해 자사의 두번째 64비트 프로세서인 ‘아이테니엄2’를 선보였다. 이로써 인텔은 지난 70년대의 4비트에서 8비트, 8비트에서 16비트, 그리고 80년대의 16비트에서 32비트로의 전이 이후 4번째 프로세서 대변혁에 나선 셈이 됐다.
인텔의 ‘아이테니엄 야망’은 14년 전부터 시작됐다. 88년 12월 HP는 EPIC라 불리는 새로운 칩 아키텍처 개발작업을 극비리에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인텔도 64비트 프로세서로 미래를 장악한다는 꿈을 꾸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부치던 인텔은 64비트 칩 개발을 위해 HP의 EPIC 아이디어를 빌려왔고 마침내 양사는 여러 번의 지연 끝에 작년 5월 처음으로 64비트 프로세서인 아이테니엄1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제품은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도 부족하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세계적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작년 3분기에 팔린 아이테니엄 서버가 500대도 채 안됐다. 이처럼 실패한 꿈을 만회하기 위해 인텔은 꼭 1년 2개월만에 또 다른 아이테니엄 프로세서를 들고 나왔다. 비록 인텔의 주장대로 아이테니엄2가 1보다 가격대비 성능이 훨씬 좋아졌다고 하지만 현재의 시장환경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도 세계 IT경기가 풀이 죽어있다. 올초 만해도 “하반기부터 IT경기가 나아질 것”이라고 했던 애널리스트와 시장전문가들이 지금은 “내년부터 좋아질 것”이라며 한발 빼고 있다.
PC보다 훨씬 보수적인 서버 시장의 특성도 인텔에겐 ‘불운’이다. 새 프로세서가 나오면 PC시장에서는 바로 판매확대로 이어지지만 서버시장은 사정이 다르다. 안정성과 신뢰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두고보자”며 기업들은 일단 구매를 뒤로 미룬다. 이를 감안한 듯 서버시장의 다크호스로 부상중인 델컴퓨터조차 ‘초반부터 아이테니엄2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형만한 아우가 없다고 했던가. 정말 이렇게 된다면 멀리 태평양 건너에 있는 한국의 속담이 정말 인텔에게는 끔찍한 말이 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의 미래를 흔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제부·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