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희 한양대 법대 교수
지난 6월 한달 온국민을 하나로 만든 ‘FIFA 2002 한일월드컵대회’.
처음에 우리 국민은 이 대회에 참가한 이래 단 한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는 오명을 벗는 일보다 일본과의 공동개최가 성공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했다. 그러나 6월 4일 우리 대표팀이 유럽의 강호인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승리하자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언론과 방송은 앞다퉈 축구경기로 시선을 돌렸고 거리·직장·가정은 온통 붉은 물결로 가득찼다.
물론 이런 축제의 주인공은 열두번째 선수였던 국민들이었으나 이를 가능케 한 일꾼은 대표팀을 맡은 거스 히딩크 감독일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 선수들의 기초체력과 기본기술 등을 대폭 강화시키는 한편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 뛰어난 자질을 보여줬다. ‘4강 진출’이라는 초과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그는 상대팀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연구분석하고 대비해왔다. 만약 그의 용병술과 전략 정보가 상대팀에 유출됐더라면 우리 대표팀은 4강 대열에 합류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북한 경비정이 서해 NLL을 침범, 우리 해군에 선제공격을 가해 우리 젊은 장병들의 꽃다운 생명을 앗아가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교전에서 우리 해군이 북한군 동향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수집·분석해서 이에 대한 전략과 대응방안을 마련했더라면 그 피해는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된 또 하나의 뉴스는 전·현직 검찰간부 소환과 관련한 것이다. 이는 일부 검찰 관계자들이 직무상 알게 된 수사비밀을 제3자에게 부정한 목적으로 유출한 혐의가 밝혀지면서 관련자 처벌이라는 사회 문제로 비화된 것이다. 이렇게 공공적인 비밀은 형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으로 보장되는 반면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크고 작은 개인적인 비밀은 프라이버시에 해당해 헌법이 보장한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공공적인 혹은 개인적인 것 이외의 비밀, 즉 ‘기업비밀’이다. 예전에는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기업비밀이 산업 발달로 그 중요성이 대두되자 이를 지키고자 하는 자와 빼내고자 하는 자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이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획득한 기술 관련 정보, 생산에서 판매까지 전략 등 각종 기업 정보를 제3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얻는 경우, 정당한 방법으로 이를 획득했다 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용하는 경우, 혹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부정하게 유출시키는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물론 이 정보(비밀)는 ‘공공에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기타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 정보’를 의미한다.
기술력이 생명인 벤처기업은 직원이 입사할 때마다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고 근무규정에 비밀유지규정을 두며 경력사원 채용시 이전 직장의 영업비밀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등 영업비밀 보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 비밀의 중요성을 정기적으로 환기시키는 사원 교육 프로그램 설치하고 새 발명·발견이 있을 때마다 신고를 의무화하는 등 간접적인 관리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또 다소 번거로울 수도 있겠으나 영업비밀 자체도 등급을 정하고 취급자와 보관장소를 구분해서 보호해야 한다. 예를 들면 그 중요도에 따라 1∼3급으로, 혹은 책임권한에 따라 대외비·사내비·부외비 등으로 나누어야만 영업비밀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보호되는 정보(비밀)가 침해받고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청구와 더불어 침해금지청구 그리고 침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예방청구, 침해시설이 있는 경우에는 폐기 및 제거청구, 침해물품이 조악해 권리자의 신용을 실추시킨 경우에는 신용회복청구 등 사안마다 민형사상 구제 및 규제방법이 있다.
벤처기업을 포함한 모든 기업은 영업과 관련된 비밀이나 정보가 계획단계에서 판매에 이를 때까지 절대로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유지·관리해야 한다. 또 기업은 정당한 보상과 철저한 교육을 통해 기업비밀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