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공존을 위한 협력

 ◆정일 목포대 중문과 교수

 지난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국 전 국무장관에게 김정일 위원장은 “e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은 김 위원장 자신이 e메일을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외국 인사들과 인터넷 교류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지난해 1월 중국방문 때에는 김 위원장이 노트북PC를 통해서 인터넷을 즐기는 사실이 알려졌다. 북한의 이 같은 변화는 김 위원장의 개인적인 관심의 외부적 확대인 것이다.

 남북IT협력의 가능성을 논하려면 남북간 협력에 대한 최근의 성과와 가능성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일본의 북한관광 전문여행사 모란봉투어리스트는 최근 북한의 가정집에 머물면서 아리랑축전을 관람하는 여행상품을 출시했다고 전한 바 있다. 북한의 홈스테이관광 허용은 북한이 지금까지 폐쇄된 공간 속에서도 개방실험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IT산업을 포함한 각종 분야에서 개방적 실험을 지속적으로 저울질하면서 연습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오는 2003년 남북 합작으로 설립되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은 장기적으로 남북한 교수 240명과 학생 2000명 규모의 종합대학으로 발전시킬 구상이라고 한다. 이전에 포항공과대와 한양대가 소기의 교류성과를 올린 바 있으나, 규모와 성격면에서 평양과학기술대학은 남북 대학간 IT교류 및 북한 대학 내의 인터넷교육센터 설립 및 운영에서 남북협력에 중요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 역시 남북IT산업 공동협력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북한의 중요한 실험실습 중 하나다.

 현재 조선콤퓨터쎈터와 평양정보쎈터를 비롯한 북한의 여러 IT기관들은 내부 기술발전을 위해 남북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이나 한양대, 김책공대와의 자매결연으로 나타난다. 향후 남북IT협력은 대학간 협력이나 교육협력으로 나타날 것이며 남한에서도 남북대학간 자매결연이 급증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 단순한 남북간 협력이 아닌 제3국과의 다자간 IT교육협력이 오히려 북한당국의 입맛에 맞을 가능성도 많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김일성종합대학정보센터는 ‘안티바이러스체계’ ‘조선글입력프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특히 김책공업종합대학이 만든 다국어 문서인식프로그램 ‘신동 2002’는 조선어·중국어·일본어·러시아어·영어 등 5개 국어로 된 인쇄문서를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선압록강기술개발회사는 IT와 생체정보기술 분야에서 40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으며 박사를 비롯한 고급 학위 소유자들로 포진돼 있다고 한다. 북한의 IT기술도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와 있음을 알려준다.

 지난 4월 베이징에서 개최한 ‘제1회 조선콤퓨터소프트웨어전시회’는 북한이 다양한 방법으로 인재양성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외국의 IT업체·단체·기관들과의 협조를 강화해 나갈 것임을 예고해줬다. 따라서 남한이 주도하는 다국적 IT기업을 설립해 북한을 상대하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남한이 제시한 바 있는 IT교육센터의 경우 대학간 교류방식을 통해 북한의 대학 내에 수용돼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방식은 한국이 주도하려는 IT교육분야에서 북한이 비교적 용이하게 한국과 일반 주민의 접촉을 차단하는 길이 될 것이다. 남한은 또한 북한의 IT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남북대학 IT교육교류를 적절하게 지원하는 일에 우선 관심을 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남북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최근 평양에서 과학기술축전이나 과학전람회, 과학도서전시회를 잇따라 여는 점에 주목, 이런 관심을 남북간 공동 관심사로 끌어들여 남한 또는 제3국에서 북한IT기술박람회를 유치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문제에 직면하지 않으면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남북간 협력에 변수와 불안요소가 많기는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새롭고 다원화된 교류방식을 실험하며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