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집 카페에서는 체제반항적인 한 비트족 여류 시인이 마약에 중독된 애인을 위해 큰 소리로 성가를 부르고 있다.
이 카페 길 건너편에는 가수 패티 스미스와 음악밴드 토킹 헤즈가 음악을 시작한 전설적인 언더그라운드 음악클럽 CBGB가 있다.
한때 뉴욕의 ‘길잃은 영혼’들의 거리로 알려졌던 바로 이 잡동사니 바우어리 거리에 생긴 지 얼마 안된 한 디지털 비디오 학원에다 영화 감상실, 컴퓨터 소매점 겸 술집이 뉴욕 비디오 하이테크 교육의 ‘아지트’로 자리잡고 있다.
이 업소 주인인 마이클 로젠블럼은 이 공간이 TV혁명의 시발점이라고 꼽는다. 전 CBS TV 프로듀서였던 그는 영화 제작기술 발전에 따른 비용 저렴화 추세를 활용해 전문가만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영화제작을 일반인도 할 수 있도록 디지털영화 제작기술을 가르치는 공간으로 이 아지트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거실에서 TV 화질급의 영화를 편집할 수 있는 시대다. 하와이 2주 여행비 정도면 랩톱컴퓨터와 핸드헬드 카메라, 애플컴퓨터의 ‘파이널 컷 프로’ 같은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 있다. 5년 전만 해도 이런 기능의 장비를 구입하려면 적어도 집을 저당잡혀야 했을 것이다. ‘DV 도조(Dojo)’라고 알려진 이 디지털 비디오 학원은 개원한 지 10주밖에 안됐지만 이미 영화 전공 대학생, 비디오광,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등 많은 수강생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5주 과정 주말 강의를 듣거나 MTV 만화작가 캔디 쿠겔의 최신 작품이나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매리드 인 아메리카(Married in America)’ 등의 영화를 보기 위해 벽돌과 연갈색 목재로 지어진 좁은 방 한 칸에 비집고 들어온다. 사실 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로젠블럼 주인이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오리엔테이션 메시지를 듣는다.
“내 견해로는 TV 프로그램이란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만들기 때문에 별볼일 없다. 이곳은 소수 엘리트만이 아닌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영화 제작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이 말은 영화를 제작해 TV방송사에 판매하려는 이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영화를 제작하려는 지망생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직업적 영화 제작자들이 갈수록 디지털 비디오 이용을 늘리고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Ⅱ:클론의 공격(Star Wars:EpisodeⅡ-Attack of the Clones)’을 감독한 조지 루커스 감독이나 ‘에린 브로코비치’ ‘오션스 일레븐’ 등을 감독하고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디지털 속편 ‘풀 프론털(Full Frontal)’을 준비중인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등이 그런 제작자들이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영화재단(FAF:Film Arts Foundation) 대니 플로트닉 교육 프로그램담당 이사는 “디지털 비디오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재단은 영화제작에 관한 세미나 및 워크숍을 연간 200회 개최하고 있으며 유능한 영화제작 꿈나무들에게 보조금도 지원하고 있다. 설립된 지 25년이 넘는 FAF는 3∼4년 전부터 디지털 비디오 교육을 시작했다.
플로트닉 이사는 “대중화된다는 것은 독창적인 콘텐츠가 늘어난다는 의미”라며 “하지만 영화배급처가 보통 저항성이 적은 영화를 선택하기 때문에 대중화 현상이 창의적인 콘텐츠가 일반 대중에게 반드시 전달된다는 뜻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로젠블럼은 한때 소형 비디오카메라로 무장한 프리랜스 기자들을 규합해 비디오뉴스인터내셔널(Video News International)을 설립한 적이 있다. 그는 이 조직을 통해 뉴욕에서 타임워너 24시간 뉴스채널 방송을 시작하게 하는 데 한몫 했다. 타임워너 24시간 뉴스채널에서는 TV 기자들이 카메라맨, 음향기술자 등과 팀을 이뤄 자체 기사를 발굴·보도했다. 그는 DV 도조에서 소형 카메라를 이용한 깊이있는 촬영기법과 분석가들이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애플의 자가 편집 소프트웨어 활용법 등을 일반인에게 가르쳐 TV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로젠블럼이 운영하는 학원 ‘도조’는 무술을 집단적으로 연마하는 도장을 의미하는 일본어를 빌려 만든 말인데 버클리(Berkeley)의 한 영화제작자 딘 애덤스 DV 도조의 강사는 “이곳은 인맥을 쌓는 사교공간”이라며 “이곳에 와서 죽치고 시간을 보내다 영화제작 프로젝트를 구상한 뒤 강사 조언을 듣고 나서 옆집으로 옮겨 시 한 수 듣고 술 한 잔 마실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등 영화나 TV와 관련된 각양각색의 사람이 이곳으로 몰려든다”고 말했다.
디지털 비디오가 필름과 비교해 단순히 저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디지털 비디오는 대규모 제작요원이 투입되면 장면을 망칠 수 있는 장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DV 도조의 한 강사는 “만약 긴 이야기를 읽어주는 내러티브 영화를 찍을 경우 사람들을 훤하게 비추는 밝은 조명으로는 관객에게 전달할 수 없는 친밀감 같은 것을 디지털카메라로 쉽게 포착, 표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샌디에이고 소재 디지털 미디어 연구업체 M2의 완다 멜로니 분석가는 비디오 편집시스템으로 5000달러 미만을 지출했을 초보 디지털 비디오 제작자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비디오 편집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매출이 전세계적으로 2000년 11억7000만달러에서 지난해 15억달러로 늘어났다고 추산했다.
<제이안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