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서 탈출하고 싶은 유럽 통신업체들은 CEO부터 갈아치워라.’
월스트리트저널유럽은 유럽의 거대 통신업체들 가운데 CEO의 교체를 통해 경영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비해 월등한 성적을 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반적인 통신시장 침체와 관련된 CEO의 역할이 새로운 주목거리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시장침체시 모든 기업이 부채삭감이나 계열사 정리 등 몸집 줄이기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지만 새로운 CEO일수록 기업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의지가 투자자들에게 크게 어필돼 그 성공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것이다.
유럽의 거대 통신업체 가운데 시장침체를 맞아 발빠르게 CEO를 교체한 업체로는 영국의 BT와 네덜란드의 KPN, 핀란드의 소네라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기존 CEO를 고수해온 업체로는 프랑스텔레콤과 최근까지 경질과 유임을 오락가락한 도이치텔레콤 등이 대표적이다.
CEO를 교체한 업체들의 특징은 새로운 경영진이 무자비한 감량경영을 약속하고, 이것이 투자자들의 환영을 받음으로써 신경영 초기부터 주가가 상승세로 돌아서 기업경영이 안정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4월 크리스토퍼 블랜드 회장과 올초 벤 버와이엔 CEO를 새로 맞아들인 BT의 경우 신경영진 부임 직후부터 일본·스페인 등지의 해외자회사 매각, 계열사 분할정리, 신주발행을 통한 부채상환 등 감량경영 발표가 잇따랐다. 이러한 발표는 투자자들의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버와이엔 CEO 취임을 계기로 주가가 상승세로 반전했고, 예정됐던 감량계획안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지난해 중순 소네라의 CEO로 새로 취임한 해리 코포넨 역시 무수익 사업부문 매각, 대대적인 인력감축, 스웨덴 텔리아와의 합병시 추가적 조직축소 개편 등을 약속해 80% 이상 폭락하던 이 회사의 주가하락세를 멈추고 경영을 안정시키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본부직원들의 식사보조비조차 무자비하게 삭감한 KPN의 신임 CEO 애드 스킵바우어는 취임 후 회사주가를 2배 이상으로 끌어올려 새로운 유럽 통신업체 CEO들 가운데 투자자들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는 인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물론 프랑스텔레콤처럼 기존 CEO가 계속 경영을 맡고 있는 업체들도 부채삭감 등 대규모의 감량경영을 선언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과거 확장정책을 주도한 기존 CEO들의 약속은 믿지 않았다. 이에 따라 추가적인 주가하락이 나타났고, 그 결과 예정된 감량계획안마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프랑스텔레콤의 경우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80% 가까이 하락, 신주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부채삭감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이자율 상승 등으로 경영에 악영향을 받고 있다. 도이치텔레콤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300만여명에 달하는 이 회사의 소액주주들이 기존의 론 좀머 CEO를 불신, 결국에는 이번 달 독일정부로 하여금 그의 사임을 받아내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컨설팅업체인 부즈알렌해밀턴의 조사에 따르면 유럽 기업의 경우 실적이 예상에 못 미쳐 중도 퇴진하는 CEO의 비율은 약 33%로 미국 기업의 22%를 크게 앞서고 있다.
그러나 유럽 통신업계의 경우에는 조만간 이 비율이 100%에 이를지도 모른다. 경영 압박을 받고 있는 대다수 업체들이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방편으로 너도나도 CEO 갈아치우기에 나선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