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한국축구와 컴포넌트 산업

 ◆박규헌 이네트 사장 khpark@enet.co.kr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SAP와 같은 세계적인 솔루션업체가 탄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요?” 소프트웨어 업계에 몸담고 있는 필자는 전통산업에 종사하는 다른 CEO들로부터 이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이 궁색할 수밖에 없다. 변명같지만 여기에는 개별 업체가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래 전부터 소프트웨어산업을 전략적인 수출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얘기는 많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기대수준에 못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의 ‘월드컵 4강 신화’.

 이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과 한국축구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현재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이 월드컵 이전의 K리그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기본기가 약한 선수들, 재미없는 경기, 장기적인 투자에 인색한 구단, 돈을 내고 경기장을 찾을 생각이 없는 관중들,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국내시장에 머물러 있는 리그운영…. 그러나 월드컵 대표팀은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 아래 이 같은 약점과 제약을 딛고 강팀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했다.

 한국 축구를 처음 접하고 히딩크 감독은 “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뒤지지 않지만 기본체력이 약하고 세계적인 트렌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의 우리 축구에 대한 이같은 진단과 처방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의 기본체력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세계적인 기술 트렌드를 따라 잡고 앞서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컴포넌트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소프트웨어 컴포넌트는 여러 개의 개별 부품을 조립하여 하나의 전자제품을 완성하는 기술을 소프트웨어 개발에 그대로 적용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 번 만들어진 컴포넌트는 다른 프로젝트에 재사용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결함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가트너그룹은 컴포넌트를 도입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생산성이 5∼10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회사에서도 자체 개발한 컴포넌트 프레임워크 상에서 애플리케이션 솔루션을 개발해 본 결과 기존 솔루션 개발 때보다 3배 정도의 생산성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세계적인 트렌드는 어떠한가. 미국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선진국에서는 웹서비스의 전단계로서 컴포넌트 소프트웨어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기술과 XML 기술 등의 발전으로 컴포넌트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천적으로는 800개 이상의 회원사로 구성된 OMG(Object Management Group)가 컴포넌트 아키텍처 표준화를 진행중에 있으며 미국 정부가 발주하는 다수의 프로젝트들이 컴포넌트 기반으로 수행중에 있다.

 컴포넌트 산업은 초기단계이므로 우리나라가 전세계적인 트렌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신속하게 준비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컴포넌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비전과 투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중복투자를 없애고 컴포넌트 기반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창출함으로써 선도적인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수출 가능성이 높은 컴포넌트 기반의 솔루션들을 집중 육성하고 이를 위한 인프라가 제공돼야 한다. 특히 애플리케이션 개발의 공통기반이 되는 플랫폼과 아키텍처 기반육성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동안 지적자산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해외시장 개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같은 노력이 컴포넌트 산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의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