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특허만이 살길이다

 ◆박광선 논설위원

 

 냉전이 종식되고 국가간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말 그대로 무한경쟁을 벌이는 글로벌시대로 접어들었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은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확보하거나 일등상품을 개발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세계 각국이 기술개발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하고 전문기술 인력양성에 나서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개발된 기술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한 특허전쟁도 치열하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특허출원건수다. 지난 70년 총 100여만건이던 전 세계 특허출원 건수가 2배로 늘어나는데 무려 22년(92년)이 걸렸으나, 여기서 2배로 늘어나는데는 4년(96년), 또 다시 2배로 늘어난 것은 3년(99년)에 불과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때 기술후진국 소리를 들으며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받던 우리나라의 국제특허출원 건수가 세계 10위권에 진입했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국내외에 출원한 전체 특허건수는 총 28만9000건으로 세계 5위 수준이다. 또 국제특허 건수 비교의 주요 지표인 ‘PCT 국제출원’에서도 지난해 2318건의 국제특허를 출원함으로써 8위를 차지했다. 2000년 11위(1514건)에서 3단계 뛰어오른 것이며, 특허출원 증가율은 지난 4년간 연평균 69.4%로 세계 1위다. 특허가 늘어나는 만큼 우리의 국제경쟁력이 제고되는 것이니 특허출원 증가현상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다. 특허출원 증가를 수용할 수 있는 제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특허 한건을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21개월)이 프랑스(8개월), 독일(10개월), 미국(13.6개월)보다 길어 특허를 심사하는 도중에 다른 나라에서 유사한 특허가 나오거나 심지어는 먼저 상품화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속하고 정확해야할 특허심사가 늦어 애써 개발한 신기술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시급히 개선해야할 문제다.

 물론 심사관 1명당 한 해 심사 건수가 300건을 넘는 등 미국(70건), 유럽연합(59건), 일본(203건)보다 엄청나게 많아 시간단축이 쉽지 않다는 점은 잘알고 있다. 하지만 제품과 기술의 주기가 짧아짐에 따라 불과 수개월만 지나도 수명이 다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서 개발된 특허기술 중 절반 이상이 산업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휴면 특허기술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특허기술(기술특허와 실용신안 등) 활용도는 지난 97년 18.2%, 98년 36.6%, 99년 43.8%, 2001년 37.3%에 불과하며, 상표 의장 등을 포함한 산업재산권 전체활용도도 97년 24.0%, 98년 46.8%, 99년 48.5%로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기술까지 포함하면 이 수치는 더욱 낮아지게 된다.

 휴면기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한 완충장치가 2000년 초에 설립된 한국기술거래소다. 기술개발에는 성공했으나 기업에서 사용하지 않는 특허기술을 필요로 하는 중소 벤처기업에 제공토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용실적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의 특허전략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허는 급증하고 있으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일례로 차세대 성장엔진인 디지털TV는 특허를 보유한 11개 기업에 제품가격의 11.1%를, DVD플레이어의 15.0%를 로열티로 제공해야 한다.

 이제 기술개발과 특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개발된 기술을 방어하고 보호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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