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한류와 한글 그리고 IT

◆하이콤정보통신 김유현 사장

 얼마전 중국의 작은 도시를 지날 때였다. 유난히 귀에 익은 노래 소리가 들려 유심히 들어보니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한 여가수의 노래가 가사만 중국어로 바뀌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한류 열풍’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최근엔 대중가요말고도 우리 드라마나 영화·애니메이션 분야까지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니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몇 백년간 중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온 우리가 중국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대전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류 현상의 원인이나 앞으로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대처방안에 대한 논의가 따로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1세기의 가장 큰 경제 주역이자 소비시장으로 대두되고 있는 중국이 우리의 문화에 열광하고 있다는 점과 우리의 문화산업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류 열풍을 활용, 한글을 중국에서 상용문자로 통용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 중국은 오래 전에 상형문자인 한자를 만들었고 고유의 문자가 없었던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전수했다. 하지만 한자는 워낙 그 수가 방대하고 형태가 복잡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중국은 이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혁명 당시에 복잡한 정자를 약자로 바꾸는 대대적인 작업을 벌이기도 했으나 날로 발전하는 IT시대에 적합한 문자로 정착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한자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채팅이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A4용지 한 장의 문서를 작성하는 데 반나절이 걸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피닌’이라는 로만자로 소리를 만들고 화면에 나타나는 한자 중 하나를 택일해 입력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는 하다. 마치 우리가 한글로 소리를 만든 후 한자를 골라넣는 한자입력 시스템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 예로 ‘클린턴’이라는 전 미국 대통령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자면 그에 맞는 글자를 지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중국은 매년 1년에 두 번씩 한자 문화국(중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으로 구성된 국제한자표준위원회를 개최해 모든 외래어 표기를 선택해야만 하는 등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산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한자 문화권에 있는 국가들이라 하더라도 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은 유럽 식민지가 되면서 로만자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우리와 일본의 경우에는 자체 소리문자를 만들어 사용해오고 있으므로 현재 중국은 IT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문명 앞에서 그들이 오랫동안 자부심으로 여겨온 한자를 소리문자로 변환해야만 하는 시기에 직면한 것이다.

 그 대안으로서 우선 한자 문화권의 소리 문자인 우리 한글과 일본의 가나, 그리고 전세계의 공용문자가 되다시피한 로만자를 들 수 있다. 그 중 한글과 가나는 세계 몇 안 되는 한자를 기반으로 개발된 소리 문자이고 500년 이상의 기간을 거쳐 발전돼왔다는 점에서 중국 내에서의 상대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가나는 46자나 되면서도 모든 소리를 표현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는 반면 우리의 한글은 24자밖에 안되면서 거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실행상의 문제점과 검토하고 개선해야 할 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5년 후면 인터넷 인구의 숫자상 1등 언어가 중국어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한글을 중국의 상용문자로 정착시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급성장하는 우리나라의 IT산업을 중국에 보다 쉽게 수출,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중국의 문자시스템을 한글 소리문자로 바꿀 수만 있다면 한국의 IT산업은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기술 및 문화적 주도권을 더욱 확고하게 거머쥐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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