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회계투명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지금 월가는 완벽한 실패의 폭풍에 휘말려 있다.”

 이는 리처드 그라소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이 분식회계문제로 휘청거리고 있는 미국 증권가를 향해 내뱉은 말이다.

 그가 말한 ‘완벽한 실패’란 기업들이 공표하는 재무제표에 대해 일반 투자자들이 전혀 신뢰하지않을 뿐만 아니라 국제 자본이나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급격하게 이탈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과다름없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주식시장을 주도하는 주요 투자자들의 76%가 미국 상장기업의 재무제표을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73%의 투자자들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하는 투자 의견에 불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미국식 회계가 규범적이고 형식적이서 기업의 진실을 담아내는 데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같은 회계부정사건의 여파로 국내 주식시장도 상승 모멘텀을 상실한 채 좀처럼 폭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동안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이 미국과 달리 비교적 양호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차별화(decoupling) 장세로 갈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요즘은 동조화 쪽에 좀더 무게중심이 가 있는 형국이다.

 미국이 분식회계문제로 떠들석한 상황에서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회계투명성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IMF 구제금융사태를 거치면서 국내 기업들의 회계투명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한창 문제가 된 스톡옵션의 회계처리 방식도 우리는 일찍부터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과연 국내 기업들은 분식회계문제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미 연초 금융감독원이 국내 주요 기업의 분식회계 사실을 적발한 것이나 얼마 전 터진 S오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 기업들의 분식회계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나오는 단골메뉴 중 하나다.

 사실 경영자 입장에서 분식회계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은행 돈을 차입하거나 입찰 참여 시 재무제표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는 상황이어서 감사 책임을 갖고 있는 공인회계사를 속이거나 회계사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분식회계를 감행하곤 한다. 비자금 조성을 위한 가공매출 잡기,매출채권 과다계상, 계열사에 대한 정확한 지분법 평가 회피, 재고자산 부풀리기 등 다양한 분식회계법이 동원된다.

 한 공인회계사는 “기업 회계기준이 모든 회계 상황을 상정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호한 경우가 아주 많다”며 “이 때문에 회계기준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주요 고객인 기업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실토한다. 미국도 기업 회계기준에서 구체적인 회계 상황을 정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공격적으로 관련 규정을 해석해 회계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결국 기업 회계기준을 아무리 강화하더라도 경영자나 회계 책임자들의 회계투명성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란 얘기다. 중요한 것은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려는 경영자들의 의식이다.

  장길수 디지털경제부 차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