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미국-고개숙인 주가...웃음 잃은 실리콘밸리

허세를 부리는 것도 오래 전에 끝났다. 주식을 완벽한 타이밍에 팔고 샀다고 자랑하는 이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한때 캔디 랜드에게 부와 안도의 꿈을 심어주었던 퇴직연금 실적 보고서도 이제는 개봉마저 되지 않은 채 곧장 서랍행이 되기 일쑤다.




 실리콘밸리의 호황이 절정에 달했던 2000년 3월, 사람들은 증시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치과병원이나 이발소, 심지어 병원 수술실 등에서도 주가수익비율과 나스닥, 주식공모 등에 대한 얘기가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하지만 지난 2년 이상 증시가 침체를 보이면서 이같은 들뜬 분위기는 이제 ‘무거운 침묵’에게 자리를 내줬다. 손에 다 쥐었던 부에 대해 남에게 얘기하는 것은 물론 잃어버린 부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모든 게 성공으로 정의됐던 실리콘밸리에서도 이같은 ‘집단실패(collective failure)’에 대한 얘기는 별로 들을 수 없다.




 한 통신업체의 생산감독인 존 호앙은 “주식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서 “개인적으로도 퇴직연금이나 보유 주식, 주식투자 손실액 등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퇴역군인처럼 이같은 투자손실이나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들은 일부 있다. 피고용자라서 오히려 형편이 낫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는 이도 있고 혹은 아직 젊기 때문에 오래 살아 주가가 회복되기를 기다리겠다고 호기를 부리는 이들도 간혹 있다.




 이들마저 이제 더 이상 마음 걱정도 없다. 한때 IPO 및 주식투자 관련 4개 e메일그룹에 소속됐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스티브 브릭맨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터질듯 했던 감정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물론 e메일그룹도 사라진 지 오래다. 주식에 혹하는 일이 결코 없었던 그의 아내도 한때 부의 꿈을 꾸다가 지금은 말을 잃었다.




 이 같은 침묵이 다른 곳보다 실리콘밸리를 더욱 더 짓누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클라리타스에 따르면 지난해 뮤추얼펀드를 비롯해 종류를 불문하고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샌타클래라 카운티 가구의 비율은 43%로 미국 전국 평균인 27%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샌타클래라 카운티 가구의 28%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주식을 보유해 전국 평균치 18%를 훨씬 웃돌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크리스토퍼 맥컬러 심리치료사는 “사람들은 보통 성공에 대해서는 떠벌리고 실패에 대해서는 축소하려는 경향이 짙다”고 진단했다. MG이미지살롱의 이발사인 마크 고메스는 머리를 자르면서 주가 움직임을 자켜보기 위해 CNBC 방송을 늘 켜놓는다. 그러나 손님들은 주식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전에 손님들로부터 주가 정보를 얻곤 했던 그는 지금은 손님들에게 주식을 처분할 게 아니면 들여다 봐야 화만 나니까 모르는 척 하는 게 낫다고 충고한다.




 거의 너나없이 이 주가폭락으로 ‘비싼 수업료’를 냈다. 컨설팅 회사인 체스킨의 크리스토퍼 아일랜드 CEO는 “예전에는 대화 중에 ‘위험요소’나 ‘실사’ 등 주식 용어를 거리낌 없이 쓰곤 했지만, 이제서야 이 같은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고 빗댔다.




 마운틴뷰에서 바지스의 다운더스트리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바지스 카트완은 2000년 머큐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스포츠도 위대하지만, 주식시장이 성공을 가능케 해주는 곳이기 때문에 새로운 모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었다. 그는 당시 그릴 위에 있던 한 곳을 포함해 5개의 TV 수상기 중 4곳의 스포츠 채널을 CNBC로 바꿨었다.




 그는 때로 하루에 10차례씩이나 거래를 했다. 이제 그의 보유주식 가치는 최고치 때에 비해 70%나 격감했다. 그는 85달러였던 시스코가 16달러로 폭락할 때까지 이 주식을 들고 있었다.




 2년이상 지난 지금, 카트완의 카페 TV는 여전히 CNBC에 채널이 맞춰져 있다. 과거 집안 청소를 하면서 CNBC를 시청하던 카트완의 아내 플라비아도 이제 더 이상 주식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녀는 “CNBC를 본 지 몇개월이나 됐다”면서 “보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마이크 코카누는 아마도 생존자라고 해야할 듯 싶다. 아니면 고립됐다고나 할까. 알버슨스 의 우유 및 육류 담당 직원인 그는 캠벨에 있는 찰스 슈왑 지점과 거래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 지점에 설치된 4대의 터미널로 주가를 확인하려고 모여들던 긴장한 투자자들과 담배를 피면서 얘기를 나누던 이들도 모두 사라졌다. 코카누는 주말이 오기 전 모든 주식을 팔아치우는 방식으로 홀로 거래한다. 이제 터미널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경쟁하거나 동정할 이도 없다. 그는 “과거에는 모두들 미쳤었다”면서 “이제 그들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니 박 기자 conypark@ibiztoday.com>